생각하기/생각을 주는 말과 글

권력을 맹종할 바에야 미개한 것이 낫다

김성열 2014. 4. 2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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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씨의 막내아들이라는 작자가 페이스북에 싸지른(좋은 표현을 최대한 아끼고 싶다) 말 덕분에 (나를 포함해) 안그래도 속 별로 안좋은 사람들이 화가 많이 났다. 가족의 생사를 몰라서 감정이 격앙된 사람들을 '미개한' 국민 정서의 표본으로 써먹는 것은 당장이라도 쏟아져 내리려는 가슴을 부여잡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구나 그 격앙된 감정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가를 생각하면 더더욱 할 소리가 아니다. 


국무총리가 물세례를 받고 대통령이 욕을 먹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이 할 일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강남대로가 지저분하더거나 서울 외곽순환도로가 정체를 빚고 있는 따위의 일상적인 일에 대해서 국무총리에게 똥물세례를 퍼붓거나 대통령에게 직접 욕지거리를 해대는 것은 과한 것이 맞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300여명의 목숨이 걸린, 극히 감정적 차원의 일이다. 그런 일을 제대로 못해서야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이 욕 안먹고 지나갈 방법은 없다.


정몽준씨 막내아들의 글을 곱씹어보면 이렇다. 대통령이 위험에도 불구하고 거기까지 갔는데,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하는데, 국민 스스로가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믿지 못하고 국무총리를 얕잡아보며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반이성적인 태도이며 결국 국민정서가 미개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언뜻 말이 될 것도 같지만 이런 이해야 말로 '대통령=권력=힘, 그러니까 닥치고 복종'이라는 '미개한'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것이다. 일찌기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지도자에 대한 권력의 위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 인민이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행위는 결코 계약이 아니라는 주장은 매우 옳다. 이 행위는 완전히 위임이나 고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이 경우 지도자는 주권자의 단순한 관리로서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을 주권자의 이름으로 행사는 것이고, 주권자는 이 권력을 마음대로 제한하거나 변경하고 회수할 수 있다.


적어도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인정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길 원한다면 루소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일반 국민 뿐만 아니라 주권을 위임받아 권력이라는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지도자(통치자)도 부정하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고스란히 받은 지도자가 그의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비판받는 것이다. 그런데 정몽준씨의 막내 아들은 비판의 방법과 수단이 다소 과격하고 감정이 앞섰다는 이유로 미개함을 운운한다. 이는 '미개하다'라는 표현을 앞세워 권력에 대한 불복종을 애둘러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대통령만 신적인 존재가 되서 국민의 모든 니즈를 충족시키길 기대하는게 말도 안'된다면, 대통령이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인격체에 지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욕을 먹어서는 안될 이유도 없다. 


정상적인 정치적 권력은 존중받아야 한다. 합법적인 절차와 협의를 거쳐 국민 개개인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존중의 대상으로서 충분하다.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권력자'를 무조건 존중해야할 이유는 없다. 권력자는 권력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힘이 있는 것이지 힘이 있어서 권력을 얻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권력의 속성을 이해하지 않고 권력에 대한 복종을 의무처럼 생각하는 것은 힘으로서의 권력을 맹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정치체제야 말로 권력에 대한 맹종을 거부한 미개함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 권력을 맹종할 바에야 차라리 과격하고 삿된 표현으로 항거하고 미개하다는 소리 듣는게 백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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