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삶과 사람

어른과 아이의 차이

김성열 2014. 2. 1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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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이로 스무살을 넘어가면 대부분 법적으로 성인이다. 성인은 보통 '어른'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통한다. 갓 스무살 넘긴 처녀총각(?)을 4,50대 삼촌 고모들이 볼 때는 아직 철딱서니 없는 '아이'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이 이미 어른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인과 어른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성인'은 다분히 행정적이고 법적인 용어다. 범법을 하면 부모님을 모셔오거나 소년원을 가는 것이 미성년자나 청소년이다. 범법을 했을 때 본인이 재판에 출두해야 하고 교도소를 갈 수 있는 것이 성인이다. 그 외에 다른 의미는 없다고 봐도 된다. 반면에 어른은 사회적인 용어다. 생물학적으로, 행정적으로 다 자란 사람이 아니라 사회통념으로 봤을 때 다 자란 사람이 어른이다. 


누군가는 결혼은 하고 자식을 낳아 키워봐야 어른이라고 하는데 전혀 귀 기울일 필요 없는 개똥 같은 얘기다. 결혼과 출산을 어른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독신주의자는 평생 어른이 아니고 아이를 갖고 싶어도 잘 안되는 난임, 불임 부부들도 어른이 아니란 얘기가 되니 말이다. 이 말은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워봐야 철이 든다는 얘기고, 부모님 고생했던거 너도 한번 겪어봐라 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의 탈을 벗는 것이다. 손가락 발가락 다 더해도 한참 모자랄만큼 나이를 먹고, 군대를 갔다오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도 아이의 탈을 벗지 못하는 껍데기만 어른인 사람도 많다. 어른은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어른과 어린아이가 뭐가 다른지 알아야 어른답게 굴 수 있다.


어른은 징징거리지 않는다

마트 가보면 가끔 장난감 안사준다고 징징거리고 떼쓰는 애들을 볼 수 있다. 아빠 엄마가 뭐라고 설명해도 통하지가 않는다. 주차장에 가서 차에 들어앉아야 우는 소리가 안들린다. 자기가 원한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징징거리는 것은 어린아이의 트레이드마크다. 마트에 가서 장난감 안사준다고 우는 어른은 없다.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뭔가가 안되면 징징거리는 어른은 있다.


어른은 세상 일이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대로 뭔가를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공을 들이는 것이고, 비록 그 결과가 내 마음같지 않더라도 룰을 어긋나지 않았다면 수긍을 한다. 반면에 덜 된 어른은 본인의 노력과 관계 없는, 전적으로 타인의 결정과 선택에 의한 결과도 수긍을 하지 않고 징징거리며 한술 더 떠서 떼까지 쓰는 경우도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징징거리고 떼를 써서 결과를 얻으려는 어른을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음에 차지 않거나 자신에게 좀 불리하다 싶으면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기 위해서 고집을 부려 남들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을 바로 그런 어른이다. 어른의 세계는 노력으로 결과를 얻고 아이의 세계는 떼를 써서 결과를 얻는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른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어른은 타인을 의식할 줄 안다

아이들을 보면 장소가 어디든 천방지축 날뛴다. 대여섯살 애들은 물론이고 초등학생, 중학생들 몰려다니는 것 보면 뭐가 그리 즐거운지 왁자지껄하다. 그러다 간혹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있는데 그냥 어려서 그러려니 생각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그러는 이유는 어릴수록 남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타인의 존재를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덜 된 어른도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하려들고 안하무인으로 군다. 그냥 제 기분에만 맞으면 되고 제가 생각한대로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의식한다는 것은 눈치를 본다는 말이 아니다. 역지사지의 바탕에서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한다는 얘기다. 역지사지를 할 줄 모르거나 하지 않으려 드는 어른은 덜 된 어른이다.


어른은 자기 일에 책임진다

이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른은 자기 일에 대해 자기가 책임질 줄 안다. 직장을 결근하면서 부모님에게 회사에 전화를 부탁하는 것은 어른이 아니다. 직장 면접에 부모를 대동하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다. 나는 예전 직장에서 부모님을 통해 퇴사 통보를 하는 직원도 본 적이 있는데 한심스럽다는 생각 뿐이었다. 


가끔 보이는 직장인의 '잠수타기'도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다.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반드시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인데 그 책임을 피해버리는 것이 '잠수'다. 이런 사람은 어른은 커녕 그냥 나이만 먹어가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은 충동을 제어한다

인간은 충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고함치고 싶은 충동, 뛰고 싶은 충동,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충동, 이성과 잠자리를 하고 싶은 충동... 버트런드 러셀은 인간의 행동의 근원을 충동이라고 했으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것은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소리 지르며 달리고자 하는 직접적인 충동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충동의 맹목적성을 말했다.


어른스럽다는 것은 이러한 충동을 이성으로 제어하며 충동을 목적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 욕구로 만들 줄 안다는 것이다. 충동을 욕구로 변화시키는 것은 단순히 참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설득하겠다는 목적을 갖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욱! 하는 성격'은 충동적이라는 얘기다. 될 수 있으면 '욱~!' 하지 않는 것이 어른이다. 예전에 '안녕하세요'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욱하는 남친' 때문에 고민인 여성을 본 적이 있다. 게임에서 졌다고 모니터를 박살내고, 삼겹살이 아닌 목살을 구웠다고 펜션 유리창을 깨버리고, 만난지 1년도 안돼 경찰서만 다섯번을 갔다왔을 정도란다. 뭐가 좋아서 만나든 간에 그 남자는 그냥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결혼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데, 결혼은 어른끼리 해도 쉽지 않다고 충고해주고 싶다.)


모든 상황에서 모든 충동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충동보다는 이성과 정형화된 욕구가 어울리는 상황에서는 (보통 어른에게는 그런 상황이 더 많다) 그에 맞게 충동을 억제할 수 있어야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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