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 작가의 골목 풍경



40대 남자의 자기 소개서 (1) - 전자오락실과 농구대잔치


대한민국의 40대 남자들은 골목길을 뛰놀며 자랐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사람이 많지도, 차가 많지도 않았다. 등록된 자동차의 수가 2000만대를 넘어선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지만, 1985년만 해도 자동차 등록대수는 고작 100만대 정도였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집밖에서 노는 것이 그리 위험하지 않았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TV나 전자오락실 정도를 빼고는 아이들이 실내에서 즐길거리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처럼 어린 나이 때부터 하루를 꼬박 채워 학원을 다니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 시간도 넉넉한 편이었다. 


골목길이든, 공터든, 학교 운동장이든 공간이 있으면 놀거리는 얼마든지 있었다. 이전 세대가 즐기던 전통적인 놀이인 구슬치기, 딱지치기는 기본이고 비석치기, 땅따먹기, 술래잡기, 숨바꼭질 같은 놀이는 40대 중후반에게는 아주 익숙하다. 또, 1982년에 시작한 프로야구 열풍에 야구가 남자 아이들의 주종목이 되기도 했었다. 꼭 야구 장비가 없더라도 상관 없었다. 적당히 넓은 공터와 테니스 공 하나만 있으면 야구 흉내를 내기에는 충분했었다. 


도심보다 더 한적한 시골에 살았다면 자연을 벗삼아 뛰고 놀았을 것이다.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초반까지도 농사를 업으로 삼던 이들이 많았고, 농촌이 고향인 베이버부머 세대들도 많았던 터라 '시골'은 그리 낯설지 않은 곳이었다. 그 시골에 살던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국민학교 시절에 시골에 내려가면 친척 형, 누나들과 어울려 여름에는 물놀이, 겨울에는 썰매와 비료포대 눈썰매를 타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공유하는 세대가 아마 40대일 것이다. 



실내에서 놀만한 것은 당연 전자오락실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전자오락실은 1990년대 중반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갤라그, 너구리, 방구차 같은 게임들이 초창기에 유행했고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학교에 따라서는 오락실에 출입한 학생에 대한 적발도 있었다. (학교만 마치면 오락실을 간다고 고발당한 친구가, 알고 보니 오락실 주인 아들이었다는 얘기는 어느 학교에나 있는 정도다.) 하지만 오락실은 항상 만원이었다. 어느 놀이든 매니아가 있기 마련이라 유독 오락실을 즐겨 다니던 학생들은 중고생이 되어서도 꾸준히 오락실을 드나들곤 했다. 1990년대 중반에 PC방이 실내 놀이의 메카로 등장할 때까지 전자오락은 꽤나 즐거운 놀이감이었다.


국민학교(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것은 1996년이다. 지금 40대들은 모두가 국민학교 출신이다.)를 졸업한 후에는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중학교에 입학했다. 대부분의 40대들이 중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 후반에는 남녀공학 학교가 드물었다. 남자는 남자중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고 국민학교와는 달리 엄격한 선후배의 관계를 몸소 배우게 된다. 2차 성징이 올 무렵이 되면 반에서 몇몇은 담배나 술을 하기도 하고, 야한 소설이나 만화책, 잡지책 따위를 돌려보면서 키득거리는 일도 잦았다. 그때 생긴(각성한) '야함'에 대한 본능적인 관심은 40대뿐만 아니라 남자의 인생을 통틀어 이어진다.


중학교에서 습득한 위계와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어 연장된다. 40대 남자들의 고등학교 시절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다. 고등학교 생활은 사회에 나가기 위한 능력과 사회 진출의 방향에 비중이 맞춰졌다. 일반적으로 대학 진학을 바란다면 인문계열 고등학교로, 취업을 원한다면 상업/공업계열의 고등학교(지금의 특성화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몸은 커질대로 커졌지만 삶에 대한 결정권은 여전히 부모나 선생님에게 있었고, 그들의 판단과 선택에 따라 20대를 살아갈 환경이 정해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취업을 준비한다면 특정한 기술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실습을 통해 일하는 능력을 키웠다. 대학 진학을 준비한다면 학교와 집을 오가며 책과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인문계열 학교를 다니는 경우라면 졸리는 눈으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해서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학교로 가는 생활을 반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집을 나설 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지만 실상은 '집에 다녀오겠습니다'가 어울리는 생활이었다. 물론 그 비극적인 전통은 지금 중고등학생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공부한 하고 있진 않았다. 에너지가 차고 넘칠 나이에 그 에너지를 학습에만 집중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수업 후 쉬는 시간에는 교실이 요란스럽기 이를 데 없어지고, 체육 시간에 공이라도 하나 던져주면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지금 40대 초중반이 고등학생 시절이던 1990년대 초에는 유난히 농구가 유행했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동네 농구 코트에는 학생들이 바글거렸다. 지금 40대 초반이라면 만화 '슬램덩크'에 꽂힌 경우가 많았을테고, 40대 중후반이라면 농구대잔치가 남자의 피를 뜨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는 마이클 조던이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어쩌다가는 본능에 너무 충실해 '수컷의 강함'을 과시하는(확인하는) 투쟁 행위를 하기도 했다. 물론 영화에서 그리는 것처럼 멋드러지거나 파워풀 하진 않았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책상이 넘어가고 서너번의 주먹질이 오가고 나면 서로 부둥켜 안고 자빠져서 바둥거리는 모습이 애초부터 멋있을 리가 없었다. 잦진 않지만 남자 고등학생들이 이렇게 주먹을 나누는 일은 당시 선생님께 적발된 것보다 훨씬 수가 많을 것이다.


Posted by 김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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