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40대 남자

40대의 연혁 (3) - 밀레니엄 시대와 중년

김성열 2017. 6. 2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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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연혁 (3)


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김영삼이 노태우 정부로부터 정권을 이어 받았다. 지금 40대의 절반이 그 당시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다. 번영의 축복은 계속될 것 같았고 어느 정도는 그러한 기조가 이어졌다. 하지만 1997년에 터진 외환위기는 지금의 40대에게 눈 앞의 삶을 현실의 문제로 제시했다. 당시 20대였던 지금의 40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에 매료되어 있던 X세대였고, 급속하게 보급되던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던 IT 1세대였다. 하지만 그런 추상적인 감투는 외환위기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대학을 휴학, 포기했고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갓 들어간 직장을 잃는 일을 경험했다. 심한 경우 가계가 파탄 나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지금의 40대가 태어나던 시기는 국가가 나서서 삶을 질을 향상시키던 때였다. 하지만 25년 정도의 시간 동안 세상은 변했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질 수 밖에 없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끝자락에 벌어진 외환위기 사태는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의 씨를 부리는 역할을 했고 그때 얻었던 삶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지금 40대의 트라우마이자 의식의 중추가 되고야 말았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을 쏟아 부었고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위기를 벗어났다. 또, 2000년 6월에는 분단의 역사 이래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이 만나 회담을 가졌다. 이전 정권 때에 비하면 자유와 안정의 기운이 '상대적으로' 넘치던 때였다. 지금의 40대에게는 특히 그랬다.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가장 역동적인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의 나이였으니 말이다. '청춘'이라는 훈장을 달고 꿈과 미래를 그리던 그들에게는 국가가 파산할 수 있던 지경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두 팔을 벌려 반길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처방했던 정책들이 결국 40대들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시절 뿌리를 내렸던 신자유주의의 기운은 지금의 40대들을 자본주의 체제 앞에서 더 없이 무력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2002년, 지금의 40대들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 포진되어 있었다. 그들은 가장 진보적인 연령대에 있었으며 실제로 가장 진보적이었다. 2003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20대, 30대는 60%대의 지지를 2부 리그에 머물러 있던 노무현 후보에게 몰아주었다. 이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기성 세대에 대한 세대교체 요구였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시기에 있거나 이미 사회에 진출해서 삶을 일구어야 하는 20대, 30대에게 기존 프레임은 낡은 것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바람과는 달리 경제적 암울함은 조금씩 깊어져 갔다. 집값은 폭등했고 양극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좋은 일자리 대신 비정규직이 늘어났고 평생 직장 개념은 옛날 얘기가 되었다. 몸과 마음은 2002년 월드컵 4강을 응원하던 광장과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던 촛불집회에 있었지만 현실은 사오정(45세가 정년)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준비가 필요한 때였다.



이전 정권과 대립하던 정치세력이 다시 집권한 2008년, 지금 40대의 모두는 30대가 되었다. 사회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세대이기에 그만큼 바쁠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결혼, 육아 등의 의무가 주어졌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 밤낮 없이 분투를 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딱히 나아진 것은 없었다. 4대강 개발이니, 천안함 격침사건이니, 구제역이니 하는 사회적 이슈들로 시끄러웠다. 세대 갈등이 뚜렷해졌고 권위주의적인 풍조로 다시 회귀하는 듯 했다. 경제 양극화는 더욱 급속히 진행되었으며 안락한 미래에 대한 보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당시 30대들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속에만 몰두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앞에서 패배감에 휩싸였다.


밀레니엄 버그를 걱정하던 2000년을 20년 가까이 지난 2017년. 1968~1977년에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40대가 되었다. 2017년을 모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1977년생 일부가 만 39세이지만, 그들도 곧 40대가 된다. 40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살아온 만큼이나 퍽퍽하기 이를 데 없다. 부모의 재력이 자식의 능력이 된다는 의식이 공공연할 정도로 빈부의 양극화는 가속되고 있으며 아예 부모의 재력과 능력을 수저의 구성 물질로 구분하는 게 보편적인 표현 방법이 되어버렸다. 


삶의 피로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비율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으며 청년 실업률 또한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비록 40대들은 '청년 실업'의 해당자가 아니지만 이태백, 88만원세대, 삼포세대 따위로 자신들을 규정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새도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앞에 놓인 삶에 대한 불안마저 어쩌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어쩌면 본격적인 늙음을 눈 앞에 두고 젊은 세대들 보다 더 불안에 휩싸여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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