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읽고 생각하기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이레, 2005)

김성열 2015. 9. 3. 09:01
728x90


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이레, 2005)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불안은 사회적 지위, '세상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자리'에 대한 불안이다. 자본과 물질의 지배를 받는 현대 사회에서 '지위'는 사랑과 신뢰를 얼마나 얻을 지 결정한다. 은근한 강요와 피할 수 없는 경험에 의해 자본과 물질은 백혈구와 DNA가 되어 우리의 혈관을 돌아다니고 세포를 매운다. 집, 자동차, 직업, 연봉, 학력, 외모, 집안 등등, 우리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에 나래비를 세우고 상대적 우열을 매긴다. 지위를 두고 노심초사, 안달복달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판국이다.


사람들은 더 사랑받기 위해, 더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에 새로 산 값비싼 가방과(이때 가방은 커피잔이나 책 같은 사물에 의해 가려져 일부만 노출해야 한다) 해외 여행하는 모습과(단체관광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값비싼 밥상(맛보다는 분위기가 먼저다)의 사진을 올려댄다. 이런 보여주기는 탐욕과는 거리가 멀다. 알랭 드 보통은 이것을 '사랑 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은 감정적 상처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이런 상처들에서 나온 피고름들이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동일하게 여기는 속물근성을 완성한다.


누구나 평등하다는 (기껏해야 투표권 정도만 평등한데도 말이다!) 민주주의 의식까지 곁들여져 상황은 증폭된다. 고 신해철이 Komerican Blues(코메리칸 블루스)에서 노래했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표를 달자. 내가 남들보다 못한 게 뭐 있나!!"라는 독기를 품고, 배우 김정은이 히트쳤던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기 그지 없는 일상이다. 단, 지위에 대한 욕망과 간절함은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준거 집단 안에서 작동한다. 아는 사람의 성공과 부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고, 그 사이에서 나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뒤쳐질까 겁이 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속물근성이 만개한 세상의 정서적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다섯 가지의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다. 철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귀함과 신념을 고수할 수 있게 해준다. 좀 더 쎄게 지르자면 지적 염세주의자가 되어 속물근성을 지향하는 자들을 천박하고 하찮은 자들로 여길 수도 있다. 일종의 정신승리이긴 하지만 꽤나 효율적인 방안이다. (단, 조건은 있다. 철학이나 지성을 적당히 갖추어야 하고 실제 주변에서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천박하고 질이 낮아야 한다.)


예술은 세상에서 무엇을 존중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정치는 이데올로기의 부자연스러움을 깨닫도록 한다. 기독교(종교)는 죽음과 신 앞에서 무엇도 덧없음을 알게 하고 보헤미아는 시류를 거부하는 자의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아쉽게도 우리가 어떤 방안을 택하든 간에 세상은 그닥 변하지 않는다. 쬐~끔은 변할 지 몰라도 발언의 영향력이 보장된 공인이 되지 않는 한, 변화는 나의 준거집단 내로 한정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알랭 드 보통이 제시한 방안들은 모두 정신승리에 기반을 뒀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정신승리면 어떠랴.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엿보며 (불안하지 않은 척하며) 불안에 떠는 것보다야 나은 일 아니겠는가. 지위의 불안을 벗어난 길을 갈지 말지, 간다면 어떤 길로 갈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라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떠올려 보면 우리는 줄곧 자유의 가능성 앞에 있는 셈이다. 자유를 선택할지 불안을 선택할지, 쇼펜하우어의 말을 따라 외로움과 천박함 중에 어느 것을 택할지는 어디까지나 '셀프'다.


sungyoul.kim72@gmail.com


300x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