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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정치론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추영현 옮김, 동서문화사, 2008)

김성열 2014. 12. 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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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정치론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추영현 옮김, 동서문화사, 2008)


인간의 감정에 대한 궁금함에서 시작했던 에티카 읽기로 늦은 여름과 가을을 꼬박 채웠다. 감정에 대해서 논한 3부와 4부, 그리고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5부를 주로 읽었다. 신에 관해서 논한 1부와 정신의 본성에 관해서 논한 2부는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선에서 접근했다. 그리고 미완으로 남아 있는 <정치론>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물론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시간이 많이 든 것은 <에티카>가 읽는 책이 아니라 공부하는 책이라는 사실을 금세 느꼈기 때문이다. 철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힘들어 다른 책들도 많이 참조했다. '책세상'에서 나온 <에티카>(완역본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들만 발췌하고 해제를 덧붙인 일종의 지침서다.), 레슬리 스티븐슨의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갈라파고스),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동서문화사)를 참고하였다. (질 들뢰즈의 <스피노자의 철학>도 참조하려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다.) 또, 감정에 대한 철학 사상을 참조하기 위해 데카르트의 <정념론>(문예출판사),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펴낸 흄의 <인성론> 해설서를 곁들여 읽었다.


그렇게 즐거운(?) 두어달을 지난 지금, (당연하게도)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해 정통한 사람이 되었다거나 감정이 갖는 철학적 의미에 통달하거나 하진 못했다. 철학자 강신주 선생이 왜 3, 4부만 읽으라고 했는지는 알 것 같지만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왜 철학자의 그리스도라고 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어렴풋이라도 뭔가 알게 된 것이 있냐고 자문한다면 - 우리는 신의 목적에 의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감정에 예속되지 않아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의지보다 지성(올바르고 적절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 존재의 보존을 위해 기쁜 감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정도다. 두어달의 성과 치고는 약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 <에티카>는 퍽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기쁨의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을 가까이 하려 하고 슬픔의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을 멀리 하려 한다. 다시 열어볼 때마다 또 즐겁게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나를 보면서 <에티카>는 나에게 슬픔보다는 기쁨을 준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을 더 읽어야, 언제쯤 되어야 <에티카>를, 스피노자를 안다고 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다만, 세상에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물고도 어렵다는 <에티카>의 마지막 구절이 있기에, 나는 또 이 책과 몇 번의 계절들을 지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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