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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2003)

김성열 2014. 12. 2.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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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2003)


정치적/사회적 권력을 갖지 못하거나 약한 사람, 계급 구조의 하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쉽게 공격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공격 후에 있을 반격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내구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대상이 (그것이 편견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나보다 권력이 크거나 있거나 계급 구조의 상위에 있다면 발톱과 이빨을 감추는 것이 여러모로 속편하다.


그렇다고 해서 (약자라고 해서) 경멸의 감정을 무조건 감추진 않는다. '조롱'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경멸감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 조롱은 상대를 비웃거나 깔보는 행위이며 계급과 권력의 위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대통령이든 기업 회장이든, 검사든 판사든, 그들이 조작하고 안주하는 위계와는 상관 없이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프레임을 구축하여 공격을 한다는 점에서 조롱은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이 정치적 행위가 너무 우아하지 못하게 활용된다. 인터넷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만 봐도 그렇다. 무책임한 정치인, 부도덕한 기업인, 부조리한(비상식적인) 법률가를 신나게 조롱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거칠고 광폭한 공격만이 난무한다. 조롱의 프레임 안에는 정치, 사회, 권력의 위계가 없다. 그 덕에 약자의 공격력이 빛을 발한다. 그 공격력의 유혹에 넘어가면 조롱 대신 분노의 배설이 판을 치게 된다. 아쉽게도 공격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순간 조롱의 미학은 사라지고 만다.


움베르토 에코<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통해 조롱의 참된 모습을 몸소 보여준다. 조롱은 나보다 못한 '바보'들을 비웃고 깔보고 놀리는 행위다. 미간을 찌푸리고 눈꼬리를 치켜올려 공격성을 드러내봤자 바보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때로는 무시하기까지 한다!) 나의 분노를 알아채지도 못하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조롱이 아니라 무분별하고 저급한 분노의 표출일뿐이다.


바보들에게 화를 낼 때는 함박 미소를 머금고 두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 척이 아니라 그런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이런 여유와 관용을 품는 것은 상대보다 내가 훨씬 고귀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교양있는 말투와 품위가 넘치는 태도로 상대를 경멸하고 비웃어야 비로소 조롱이 완성된다. (여기에 재치가 넘치는 레토릭까지 구사하면 금상첨화다.) 물론 바보들은 (이토록 우아하기 그지 없는) 조롱마저도 알아채지 못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가 달리 있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바보이기 때문이니 신경 쓸 것 없다. 


아무리 봐도 바보라고 밖에 여길 수 없는 누군가를 비웃고 경멸하며 동시에 나의 기품과 교양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교과서와 다름 없다. 만약 지금 당장은 누군가를 조롱할 필요를 못느끼더라도 책장에 꽂아둘 가치는 충분하다. 항상 그렇지만 세상 만물은 필요할 때는 구하기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조롱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일이 자꾸 늘고 있다. 그러니 미리 이 책을 갖춰두면 마음이 든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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