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을 일상적으로 하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마음먹고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은 당연히 잘 나오고, 발에 땀나도록 열심히 뛰어다니면 영업실적이 오르고, 날마다 연습하면 언젠가 전문가가 될거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해 많은 사람들이 삶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자기개발서들을 보면 성공의 길은 우리 앞에 있다.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실천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일만 시간을 바치면 전문가가 되고, 글로 쓰면 꿈이 이루어지고, 몇 가지 좋은 습관(성공한 사람의 습관)을 갖추면 성공은 필연적이다. 자기개발서에 들어 있는 수 많은 성공 사례들 앞에서는 설득되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나만 잘 하면, 열정과 노력으로 무장하면 상황은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성공의 지름길은 없지만 성공 비법은 무수히 널려 있는 것이 희망으로 가득찬 우리의 처지다.


하지만 현실은...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대부분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없다. 학업, 직업, 연애, 놀이 등이 다 그렇다. 내가 배울 것들은 교육 체계와 사회의 통념이 정한다. 내가 원하는 직업은 사람을 무한대로 필요로 하지 않거나 돈이 되질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며 때로는 법과 관습에 따라 욕망을 눌러야 할 때도 있다. 놀고 싶다고 해서 언제나 놀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놀이의 모든 규칙을 내가 정할 수도 없다. 


통제하는 힘의 대부분은 내가 아닌 다른 것에서 나온다. 나보다 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시스템과 규칙(룰), 그것도 아니면 우연이나 운 따위가 우리보다 더 큰 통제의 힘을 갖는다. 우리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착각이다. 이 착각에 빠지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힘겨움과 고통을 더 잘 버틸 수 있다. "노력하면 나도 이 회사의 임원이 될 수 있을거야.", "열심히 하면 서울대학교를 갈 수 있을거야." 같은 생각이 없으면 지독한 직장생활이나 비참한 학창시절을 무슨 수로 견디겠는가?


통제의 환상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외부 환경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쉽게 말해 우리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다.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자신감을 불어넣는 자기개발서들의 대부분은 이런 '통제의 환상'을 바닥에 깔고 있다. 노력, 열정, 성실함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하려면 상황을 통제하는 힘이 우리 자신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통제의 환상이 먹히는 이유는 그 논리가 단순하고 명확하기 때문이다. 걱정 대신 열정으로, 한숨 대신 함성으로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는 접근이 쉽고 실천 방향이 명확하다. 그 방법으로 성공한다면 모든 공치사를 나에게 돌릴 수 있어 더없이 뿌듯하다. 실패해도 실패의 원인 파악이 명쾌하다. 나의 열정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니 복잡한 분석이 필요 없다. 남의 탓, 세상 탓하는 구차한 행동도 피할 수 있고 뭘 더해야 하는지도 알기 쉽다. 긍적적이고 낙천적인 전망을 갖기에 이보다 효율적인 발상은 없다.


경계의 구분이 필요

상황을 통제하려는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다. 통제력이 미치는 부분과 그렇지 않는 부분은 구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구분 없이 나에게 모든 통제의 힘과 권한이 있다고 착각하면 자신이 성공과 실패의 모든 이유가 된다. 성공에 대한 자기기여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할 수가 있고, 실패했을 때는 자기를 무리하게 과소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반성과 성찰이 일방적인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로 치우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강준만 교수는 통제의 환상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의 경계를 무시'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서 성공을 원하고 꿈을 이루길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많은 일들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은 30% 밖에 안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운칠(運七)'을 '운육(運六)', '운오(運五)'로 만드는 노력이다. 그 노력을 위해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은 정확하게 구분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 구분 없이 통제의 힘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면 대책 없는 긍정주의자, 낙관주의자에 머물 뿐이다.


Posted by 김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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