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들 한다. 그 선택에는 고민이 따른다. 무수한 고민들은 저마다 무게가 있다. 선택의 결과가 일상적이고 가벼운 고민도 있는가 하면 선택의 결과가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고민도 있다. 일상적이고 가벼운 고민은 고민 대접을 받지 않는다. 점심은 뭘 먹을 것인지,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술 안주는 뭘로 할 지 고민하는 것은 선택의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청혼을 받아들일지 말 지, 어떤 학과에 진학을 할 지, 어떤 회사에 취직을 할 지, 빚을 내서 집을 살 지 말 지 같은 고민은 비교적 심각하다.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확고한 신념이나 명확한 예상이 없을 때,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거나 감당할 능력이 없을 때 우리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정을 미루거나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맡기려고 한다. 결정을 미루는 것은 곤란한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서다.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은 결과에 대한 심적 책임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남에게 선택을 미루거나 선택을 회피하는 것은 능동적인 삶의 모습이 아니다. 굳이 둘을 비교하자면 그나마 남에게 미뤄서라도 결정을 하는 것이 좀 낫다. 심적 부담을 덜든 어쨌든 선택의 득과 실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 "당신의 선택에 따르겠다." 말에는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가 들어 있다. 이런 각오가 있다면 고민의 끝을 볼 수 있다.


선택을 미루고 피하는 것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행동이다. 그 행동이 허락되는 상황에서 끝까지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선택의 기회는 날아가고 고민의 끝을 보지 못한다. 선택을 미루고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결국 시간과 상황에 떠밀려 선택을 해야 한다. 고민의 끝을 보긴 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선택의 결과를 책임지는 비극이 펼쳐진다.


철학에 '뷔리당의 당나귀'라는 개념이 있다. 양쪽에 먹이를 놓아두었을 때 어떤 것을 먹을까 결정하지 못한 당나귀가 결국은 굶어 죽는다는 이야기다. 고민 앞에서 뷔리당의 당나귀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도 저도 선택하지 못하면 결국은 굶어 죽는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죽음만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비록 선택이 틀렸거나 옳지 않았을지라도 한쪽의 먹이는 먹어야 '산 당나귀'가 될 수 있다. 일단 살아야 다른 선택을 또 해볼 수 있지 않은가.


고민의 끝은 선택이어야 한다. 고민이 많다고, 머리가 아파 죽겠다고 하면서 정작 선택은 하지 않는다면 쓸 데 없는 고민을 하는 것이다. 능동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을 피하거나 선택의 결정을 남에게 미루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남에게, 세상에 묻어가는 삶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자 한다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능동적인 삶은 그런 용기로부터 나온다.


Posted by 김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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