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삶과 사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자

김성열 2014. 11. 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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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상황이나 사람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들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물, 상황, 사람을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불필요한 갈등이나 마음의 동요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좀 더 설명을 하자면 현실은 나의 생각이나 기대와 다르게 흘러 갈 수 있고, 타인은 나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으니 억지로 나의 주관에 맞추려 들지 말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를 떠나서 참 듣기 좋은 얘기다. 나의 무력함을 받아들이고, 상황의 객관성을 받아들이고, 타인이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평온할 것 같다. 그런데 무작정 그렇게 하는 게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 만약 나의 무력함을, 사회의 부조리를, 상황의 불합리를, 타인의 부도덕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인다면? 그 때는 그저 내 마음 편하자는 자기합리화나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는 사람 중에 술만 마시면 주사를 심하게 부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것도 나와의 다른 점이니 비판하고 바꾸려 들기 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마음은 편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두 사람의 관계 발전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도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야'라고 하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분노나 증오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사회와 나의 관계, 상황과 나의 관계, 타인/사물과 나의 관계에 있어서 관용을 뜻할 수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무절제한 방종에 대한 용인 또는 방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대상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대상을 객관화 시켜서는 안된다. 객관화된 대상에 사랑의 감정을 쏟을 수 없듯이 객관화된 대상과는 주관적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나와 주변을 이루는 '관계'는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어떤 것도 관계가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나' 역시 관계 안에서 존재의 가치가 있다. 그토록 중요한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때로 주관과 주관의 충돌이 빚어내는 불편함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대상에 대한 이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동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파고들어야 한다. 대상 안으로 들어가서 인식하고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론 그런 인식과 이해는 주관적이다. 하지만 먼 발치에서 도인처럼 미소를 지으면 바라보는 것보다는 훨씬 애정이 넘치는 일이다.


마음이 평온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 혼자 편하려고만 들면 관계는 부실해진다. 관계는 마음의 동요와 불편함을 가져오지만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한다. 존재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마음의 평온이 중요한가? 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스님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는 이유가 다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관계 안에 살고 있고 관계 안에서 살아갈 것이라면 관계가 빚어내는 마음의 불편함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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