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직장생활

정리해고의 본질

김성열 2014. 6. 1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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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는 경영이 악화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대표적인 기업 구조조정 방법으로 직장인에게는 (두렵고) 불편한 말이다. 정리해고의 대상이 된 사람도 불편하고(어디 불편하기만 하겠는가) 그 대상에 오르지 않은, '살아 남은' 사람도 불편하다. 물론 정리해고를 결정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사람(경영자)도 불편하다. 한솥밥 먹던 사람을 내치는 것이 속편하다는 소리는 누구도 (감히) 하지 않는다.


그런 불편함 덕분에 정리해고는 기업의 생존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고려된다.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지만 기업의 구조조정의 방법 중에 이만큼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기계나 설비 따위의 물적 자원보다 인적 자원이 생산의 중심이 되는 기업에서 특히 그렇다. 기업 운영을 위한 비용 중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비용이 대부분인 기업은 정리해고의 유혹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정리해고의 본질

그것이 이루어진 배경이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정리해고는 서글픈 일이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직업을 잃는다는 것은 일시적이나마 '밥줄'이 끊어지는 것이다. 밥줄이 끊기는 사람의 심정은 말도 못할 정도고 그것을 끊는 사람도 정말 사람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사람의 관계의 대부분은 감정으로 이루어지지만 정리해고의 순간만은 그런 감정들을 모두 배제해야하기 때문이다.


정래해고의 순간만은 그 대상자를 사람이 아닌 비용으로 보는 것이 정리해고의 본질이다. 만약 정리해고의 대상자를 끝까지 사람으로 본다면, 감정을 기반으로 한 유대관계에 있는 타자로 본다면 정리해고는 쉽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직원 모두가 동일한 수준의 책임과 희생을 떠안는 것이 심정적인 불편을 덜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비용으로 보면 정리해고가 가능해진다. 비용이라는 것은 합리성이나 효율성의 대상이지 감정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위한다는 취지가 경영자 정서의 한켠을 차지하기도 한다.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삶에 대한 책임과 애정이 경영자에게는 정리해고의 합리적 이유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결국 남아 있는 직원의 삶을 위한다는 감정적인 목적을 위해 다른 직원의 삶을 비용이라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 정리해고다. 이처럼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한 쪽은 감정적으로, 한 쪽은 이성적으로 보는 일관성 없는 잣대 때문에 정리해고는 항상 불편함과 찜찜함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고용의 본질

정리해고를 결정한 경영자는 괴로워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 괴로움이 같이 일하던 사람을 보내야 하는 섭섭함과 서글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정리해고까지 해야하는 열악한 상황에 대한 비탄일 수도, 회사가 그런 상황에 오게끔 이끌어온 최종 책임자인 경영자 자신의 패배감과 자괴감이 더 클 수도 있다. 단순히 사람과의 유대관계를 끊는다는, 타인에게 아픔을 준다는 괴로움의 정서가 지배적이라면 정리해고가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할 공산이 더 크다. 하지만 경영자는 비용, 효율, 합리성을 따지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더 자연스러울 지도 모른다. 애시당초 경영자가 직원을 고용한 것은 이윤을 내기 위함이지 그들과의 유대관계나 정서적 결합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 직원을 내보낼 때도 이윤, 손해, 비용 따위의 것들을 앞세우는 것이 당연한 얘기가 될 수 있다. 기업이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사회적 의무감이나 동정, 박애감, 인류애적 연대감 때문이 아니니 그들을 내칠 때도 그런 것들이 앞에 설 수 없는 것이다. 



정리해고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경영자는 감정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도 사람이니 아쉽고 서글프고 괴로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감정이 정리해고의 결정과 실행에 있어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은 (받아들이든 않든 간에) 인정하자는 얘기다. 독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정리해고를 당하는 직원이나 정리해고를 결정하는 경영자의 감정을 고려한 '인간적인' 정리해고는 세상에 없다.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회사는 바로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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