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직장생활

왜 회사는 변화하기 어려울까? (2) - 결백한 방관자

김성열 2014. 5. 2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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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하지만)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직장에서의 일은 여러 업무가 각자의 역할로 분배되어 퍼즐처럼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든다. 회사와 관련한 얘기 중에 커뮤니케이션, 팀웍, 연대감, 협력, 시너지 따위의 말이 끊임이 없다는 사실이 회사라는 조직의 태생 자체가 혼자서는 일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잘 말하고 있다. 


불분명한 책임

이처럼 서로 물리고 물리는 퍼즐처럼 얽혀 있다보니 업무에 대한 책임 소재 구분이 불명확할 때도 있다. 어떤 부서나 담당 직원의 명백한 과실이라면 모르겠지만 계획이나 일정대로 일을 진행하고서도 목표에 이르지 못했을 때는 그 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 아리송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사후 평가를 통해 실패의 원인을 밝히거나 책임과 잘잘못을 따지기야 하지만 그것은 '만약에 이렇게 했더라면'이나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을 전제로 한 가정일 뿐이니 합리적일 수는 있어도 절대적인 해석은 될 수 없다.)


비효율, 부조리, 불합리 따위의 '개선해야 할' 요소들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 이유도 회사라는 조직의 이러한 태생의 한계에서 찾을 수 있다. 명백한 각자의 책임 안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는 큰 문제가 없다. 반면 꼭 찝어서 그 누구의 책임이라고 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는 여간 머리 아픈 것이 아니다. 그래서 조직은 수직적 구조를 가진다. 특정 부서원의 책임이라고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부서장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수직 구조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그 책임은 무게가 더해진다. (높으신 분들이 월급을 많이 받는 이유가 바로 책임의 값이 크기 때문이다.)



결백한 방관자 되기

이렇게라도 문제가 해결되면 다행이다. 그런데 비효율이나 불합리, 비상식, 부조리 따위의 요소들은 회사의 전반에 걸쳐있는 분위기인 경우가 많아서 특정한 형식의 책임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누군가 이러한 문제를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거나 책임을 지려하지도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조직에 소속된 사람들을 비난할 일이 전혀 아니다. 직장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 안에 있으려는 것을 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부분은 '결백한 방관자'가 된다. 벌어진 일과는 관계가 없는, 그저 옆에서 바라보는 방관자로 자처하길 바라보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비평가나 해설가가 되는 경우도 흔치 않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줄 알았어.", "위태위태하다 했다 내가...", "내가 진작에 안된다고 했잖아. 회의 때 내가 한 말 기억나지?" 따위의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죄 없는 방관자로 자신을 설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며 방관자가 되면 문제에 대한 책임은 공중에 두둥실 뜨게 된다.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까이 다가서지 않겠다는, 외면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조직의 안정감이나 효율보다는 자신의 편안함을 선택한 결과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



결백하지만 무관하지 않은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은 문제와 연관이 없다고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특정 몇몇 (지독히 비합리적, 비효율적, 비상식적, 몰상식한) 사람들에 의해 그러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한다거나 방관자를 자처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은 그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것 말이다. 


결백한 방관자라고는 하지만 퍼즐의 한 조각임에는 틀림 없다. 문제를 용인하고 눈 감고 넘어가는 방관자는 문제의 책임을 갖지 않을지언정 무조건 결백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글의 시작에서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면 모든 일에 대해서는 아니더라도 직장에서는 특정인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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