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연애

거지 같이 사랑하지 말자

김성열 2014. 2. 1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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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또 다시) 발렌타인데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이나 기타 등등의 선물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거나 상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좋은 의미의 날이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상술의 거미줄을 100% 벗어날 순 없지만 발렌타인데이가 갖는 (현대적) 의미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꽤나 뜻깊다.


정도와 수준은 다르지만 사랑에 빠지면 그 대상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말만 해주고 싶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사랑에 빠진 사람의 공통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해 먹는 사람들도 있다. 사랑을 가장하거나 혹은 서로 사랑한다는 전제를 무기로 삼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위의 사진이 대표적인 사례로 충분하다. 발렌타인데이에 남자친구에게 초콜릿 선물을 하면서 화이트데이를 기대한다고 써 놓았다. 사진의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발렌타인데이라서 초콜릿 선물 줬으니 화이트데이 때 나 명품 가방 사줘"다.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수도 있고 사랑을 가장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상대의 감정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의도는 숨기지 않았다.


사실 위와 같은 노골적인 의도는 꼭 특별한 날, 특별한 선물을 주고 받는 것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을 보면 데이트 할 때 들어가는 밥값, 술값, 영화티켓값, 자동차기름값까지 온갖 비용을 남자가 지불해야 한다는 의식의 여자들이 꽤 있다. 데이트 할 때 들어가는 비용은 두 사람의 공통 비용인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불한다면 다른 한쪽은 자신의 재화나 노력의 소모 없이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얻게 된다. 자존심 때문인지 경제적 문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 또는 필요한 것을 상대에게 얻는다는 속성은 마찬가지다. 



스폰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간간히 '스폰 받는' 연예인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여자 연예인의 경우가 많은데 재력 있는 남자를 '스폰서'로 두고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여러가지 재화를 얻거나 스폰서의 지위나 재력으로 자신의 이익이나 유리함을 얻는 것이다. 스폰 받는 연예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사회통념상 그런 관계를 인간적이라고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의 속물성에 대해 거부감들이 있어서 좋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스폰을 주고 받는 관계를 단지 연예계라는 비일반적인 환경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초콜릿을 선물하고 명품 가방을 원하거나, 사귄다는 이유로 카드빚을 대신 갚아달란다거나, 데이트 비용은 네가 남자니까(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남자니까'가 전부다) 모두 지불하라거나 하는 것들이 연예인의 스폰 받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스폰을 주고 받는 관계는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니까 사랑하는 연인끼리 주고 받는 관계와 다르다"라고 반론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연인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관계인데 왜 스폰 관계를 흉내낼까?"라고 말이다.


받은 것의 금액이 적거나 작은 것 하나라도 준 것이 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마 상대가 지금보다 더 부유하다면 그 수준에 맞춰서 뭔가를 원할 것이다. 받은 것의 금액은 상대의 부와 관련 있을 뿐 원하는 것을 남에게 바란다는 속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거지가 1000만원의 적선을 바란다고해서 구걸이 '지원 요청'이 되진 않는다.


또, 상대에게 뭐라도 준 것은 내가 받아야할 이유를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초콜릿 쪼가리라도 주고 명품 가방을 원하는 것과 그냥 명품 가방을 원하는 것의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그냥 달라고 하는 뻔뻔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뭘 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고 받는 것은 거래라고 해야지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선물이라고는 하긴 어렵다.



이 거지 같은 사랑

사랑은 상대에게 뭔가를 줌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받지 못해서 섭섭할 수는 있어도 받기 위해 주지는 않는다. 내가 원하는 무엇을 노골적으로 상대에게 바라거나 그것을 얻지 못했다고 마음 상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한 술 더 떠서 원하는 무엇을 얻기 위해 사랑을 가장하거나 관계를 연인으로 위장하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파렴치한 짓일 뿐이다.


연인의 관계에서 사랑의 감정 따위는 크게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부질 없는 얘기다. 하지만 나름대로 사랑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사랑하는 척 하거나 '사랑해'라는 말을 전략적으로 쓰지 말았으면 한다. 사랑은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상황 설정이 아니라 순수한 감정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거지 같은 사랑은 해도 된다. 하지만 거지 같이 사랑하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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