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연애

명절에 대처하는 남편의 자세

김성열 2014. 1. 2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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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 아직 좀 남았네 하던 그날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아내가 착한 며느리의 가면을 써야할 시간, 명절이 오고야 말았다.


명절이 없으면 생기지 않을 일들과 그것들로 인한 감정들은 명절 후의 상황을 나쁘게 만들기도 한다. 명절을 한번 째는 것도 방법이라 했지만, 실상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야말로 울며 겨자먹기다. 특히 며느리의 지위에 있는 여자들의 고통은 육체와 정신에 고르게 미치기 때문에 며느리들의 입장에서는 시월드라는 이름의 헬게이트 앞에 서 있는 판국이다.


명절을 지나고 나면 부부싸움이 느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부부 사이의 갈등은 명절을 지난 달의 이혼율을 11% 정도 올린다고 하니 명절이 부부에게 주는 영향력은 크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명절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미풍양속이니 그냥 넘어가자고 해버릴 일이 아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을 줄이는 것은 애정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시월드라는 거대한 권위 앞에서 항거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아내들을 위해 남편들이 나설 때다.


명절 부부싸움의 메카니즘

명절 스트레스에 압박을 받는 아내가 그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남자라면 술이라도 퍼 마시고 고함이라도 지를 수 있지만 여자는 그것도 어렵다. 그렇다고 명절 끝난 후에 아내를 여성 전용 룸싸롱 같은 곳으로 보낼 수도 없는 일이다.(아내가 원한다면 몰라도...) 다행히 여자는 그냥 말을 늘어놓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어느정도 풀린다. 


여자는 원래 결론이 없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남자들은 그것을 잘 참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명절 만큼은 남편이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 아내에게 관심이 있음을, 둘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남편이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내는 둘의 관계가 돈독하지 않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런 불편한 느낌과 그런 느낌의 원인 제공자인 남편의 태도에 대해 화가 나게 되며 그것이 부부싸움으로 번져가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편

"남편은 역시나 남의 편"이라는 아내들의 핀잔과 체념이 섞인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피식 웃고 넘어갈 얘기가 아니다. 그 말에는 "너는 왜 내 편이 아니니?"라는 섭섭함도 녹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의 편을 원할 때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나 상황을 마주했거나 위안을 받고 싶을 때다. 아내는 명절에 남편이 내 편이길 바란다. 어려운 상황을 같이 풀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아내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위로를 해주는 "내 편인 남편"이 필요한 것이다.


남편은 명절에 있어 평소보다 더 아내의 편이 되어야 한다. 아내가 시부모나 시누이 뒷담화를 하면 맞장구를 쳐라. 아내가 뒷담화가 시월드를 엎을 모종의 계략이나 실질적 행동의 근원이라고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 원래 뒷담화란 약한 자가 강한 자에 대해서 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뒷담화로 퉁치는 것이다. 뒷담화를 하는 아내의 심정을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동의해 주면 그만이다.


"우리 집안을 욕하고 내 부모와 형제를 욕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나?"라고 한다면 괜한 효자 코스프레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아내의 앞에서 아내 시월드의 둘째 아들이 될 필요는 없다. 아내 앞에서는 아내의 편인 남편이 되어야 한다. 부모와 형제가 뒷담화의 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거나 흠잡을 데 없는 무결점 집안이 아니라면 그냥 아내의 편을 들어야 한다. 같은 편은 원래 그런것이다. 틀린 말 잡아내겠다고 덤벼들면 같은 편이 아니다.


약간의 과장된 수사로 아내가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다면 남편이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단 아내의 편이 되겠다는 작정을 하면 아내의 뒷담화에 추임새 정도는 얼마든지 넣어줄 수 있다.



관심, 관심, 관심

"아까 술상 들어갈 때 아주버님이 나한테 하는 얘기 들었어? 어떻게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 있어?" 명절에는 이런 식의 말이 나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뭐라 그랬는데? 난 못들었는데?" 이러면 아내는 일단 기분이 상한다. "뭐 흠잡을라고 그랬겠어? 그냥 해본 소리겠지. 신경쓰지마." 남편이 이렇게 얘기하면 불난 집에 기름 뿌리는 겪이다. 감정의 공유는 커녕 완전 남남처럼 구는 남편이 좋아보일리 없다.


명절이 되면 아내는 평소에는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데 이미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사람들이 어떤 성향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가야 한다. 그런 긴장 상태에서 아내는 집안 어른이 툭 던지는 한마디에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국이 짜네, 술상이 빨리 안나오네, 애들 옷이 촌스럽네 같은 말에 아내는 화가 치민다.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없다.


다만 그런 상황으로 인한 아내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는 것을 남편이 할 수 있다. 남편은 촉각을 세워 아내가 겪는 것들을 최대한 공유해야 한다. 아내의 투정이 나오기 전에 위로의 한마디를 던지고 감정을 공유했다는 표시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대충 "나도 들었어. 그냥 니가 참아." 정도로 넘어가선 안된다. "아까 형님이 좀 심한 말 한 것 같던데 괜찮아? 저 인간은 나이 먹고도 철이 안드네. 내가 가서 한마디 할까?" 이런 식으로 적극적이어야 한다. 


정말 가서 한마디 하라고 하면 어쩌나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좋아, 가서 한방 먹이고 와"라고 부추기는 멍청한 아내는 잘 없으니 실제 실행 여부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아내는 깨지기 쉬운 그릇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명절이라는 상황에서 며느리는 그저 부엌을 오가고, 아이를 돌보고, 방을 쓸고 닦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안받을리 없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낯선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안받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적으로 쇄약해진다. 쇄약한 것은 깨지기 쉽다. 오세영 시인은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고 했다. 깨진 아내의 마음은 칼날이 되어 아내 자신을 베고 남편을 찌르게 된다.


명절 동안 남편은 아내를 깨지기 쉬운 그릇처럼 여겨야 한다. 남편은 아내의 편임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며, 아내의 감정을 공유하기 위해 끊임 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년에 두어번인데 뭐 그렇게나 민감할 필요 있냐고 할 일이 아니다. 명절 동안 아내는 깨지기 쉬운 그릇이기 때문에 남편은 아내의 안정과 균형을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한번 깨진 그릇은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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