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문학동네, 2004) 삶의 길목 길목에 섰을 때 우리의 눈과 몸은 밝고 따뜻한 양지를 향한다. 혹여 몸은 응달에 머물고 있을지언정 양지를 향한 관심과 욕망은 시들지 않는다. 즐거움, 기쁨, 우월함, 명랑, 쾌활, 호의, 환희 따위의 좋은 감정을 향함은 본능에 가깝다. 세상은 그런 좋은 감정들에 찬사를 보낸다. 그런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절대적인 이유는 없지만, 그늘진 감정보다 감각적으로 끌린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것들은 삶의 지향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김승욱의 이야기는 그런 지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늘에 웅크리고 않아서 갖은 불편한 감정들을 들춰낸다. 자괴감, 미움, 절망, 고독, 불안, 열등, 비탄, 시기, 멸시 같은 감정들이 그의 이야기의 결을 이룬다. 그렇다고 현진건의 '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