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직장생활

아싸여도 괜찮아 - 인맥의 허와 실

김성열 2022. 8. 6.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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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과 인맥

인맥은 직장생활에서 장점의 하나로 꼽힌다. 인맥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인맥을 개인의 능력이자 경쟁력으로 여긴다. 어떤 설문조사를 보면 인맥을 능력이라고 답한 직장인이 91%에 달할 정도다. 실제로 인맥은 요긴하게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인맥을 이용해 영업 라인을 넓히고, 시장이나 경쟁사 정보를 입수하고, 휴민트(HUMINT, 인적정보)를 동원해 막힌 일을 뚫어내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인맥도 과연 능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분위기는 소위 마당발, 요즘 말로 인싸라고 불리는 직장인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반면에 인맥도 변변찮고 (아싸 까지는 아니라도) 관계 만들기에 익숙하지 않은 직장인들은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진다.

 

하지만 직장생활에서 인맥은 한계가 뚜렷한 편이다. 특히 직장을 떠나거나 일하던 분야에서 벗어나면 직장생활을 통해 형성했던 인맥은 효율이 급속하게 낮아진다. 직장생활 중에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서로를 '어떤 회사, 어떤 직급의 아무개'로 기억한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회사', 어떤 직급'이지 '아무개'가 아니다. '아무개'는 '회사'와 '직급'을 상징하는 것 이외의 의미는 없다. 만약 '아무개'가 직장을 그만두면 '다른 아무개'가 회사와 직급을 대신한다. 당연히 인맥도 새로운 아무개로 옮겨가게 된다. 이는 직장생활에서 맺는 관계의 대부분은 비즈니스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가 사라지면 관계의 밀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매일 얼굴을 보고 몸을 부대끼며 함께 일한 사이라면 '아무개'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크긴 하다. 하지만 그런 '살가운' 경우가 아니라면 직장생활을 통해 쌓은 인맥의 대부분은 일정한 공백기를 지나면 사라진다. 직장생활을 한참 하다가 1년 정도 백수 생활을 해 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리를 떠난 처음 한 두 달 정도는 업무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오고("부장님, 언제 그만두셨어요?"),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인사를 건네고("과장님, 잘 지내시죠?"), 빈말일지언정 약속을 청하기도("차장님, 언제 식사 한번 하셔야죠?") 한다. 그 후 시간이 지날수록 연락의 빈도는 줄어든다. 결국 '아무개'를 기억해주던 몇몇을 제외하곤 관계가 이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즈니스가 끝났어도 형님, 동생 하며 사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런 관계에는 다음 비즈니스를 위한 일종의 적금 성격이 있다. 관계를 굳이 끊을 필요는 없으니 큰 힘을 들이지는 않고 유지만 해두는 것이다. 그러니 직장을 떠나거나 일하던 분야에서 멀어졌을 때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의리가 없다고 힐난하거나 섭섭하다고 할 필요가 없다. 비즈니스를 토대로 만들어진 인맥은 기본적으로 '필요'에 의한 관계다. 생각만큼 끈끈하지도, 견고하지도 않다.

 

인맥의 한계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관계 맺기가 너무 허술했기 때문에, 관리가 치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맥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론할 수 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관계 맺기도 하기 나름인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하고 싶은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말콤 글래드웰<티핑 포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었을 때 나를 진정으로 실의에 빠지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2명 정도를 든다고 한다. 국내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나서서 도와줄 사람의 수'를 묻는 설문에서는 10.9명이라는 답이 나왔다. 이 10에서 12명은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친근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나 관계 '공감 집단'의 전형이다.

 

말콤 글래드웰은 돈독한 관계를 맺는 사람이 12명 정도에 머무르는 이유를 '사람에게 투자할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죽었다는 소식에 실의에 빠질 정도로 절친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쏟아야할 최소한의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수가 12명을 넘어서면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의 배분 문제가 생기게 된다. 만약 공감 집단 구성원을 30명으로 만들려면 12명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반 이하로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관계의 밀도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인맥의 속성

공감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 12명 정도 수준이라는 사실은 인맥의 두 가지 속성을 드러낸다. 하나는 그 12명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인맥의 친근함이나 돈독함은 공감 집단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맥이 풍부해도 정서를 공유할 정도의 유대감을 갖는 관계가 아닌 사람이 인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의 인맥에서 거의 고정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가족과 절친한 친구를 빼고 나면 공감 집단에 포함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직장생활을 통해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공감 집단의 바깥에 속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료들끼리 형님, 동생이라 부르며 친근감을 과시하고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공감 집단에 들어갈 정도의 수준은 아닌, '피상적 관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인맥의 두 가지 속성 때문이다. 곁들여서 말하면, 직접 만나고 대면해서 맺은 관계도 이렇게 얕은 판국이니 SNS 같은 온라인을 매개로 맺어진 관계의 깊이는 잴 것도 없다. 그런 관계의 대부분은 피상적 관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피상적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

 

인맥이 무의미하다거나 인싸를 업신여기는 게 아니다. 피상적인 관계가 삶의 경쟁력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하는 강준만 교수 같은 사람도 있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인맥, 마당발의 효율성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인맥이 나의 결여된 부분을 모두 채워줄 것이라고 맹신하지는 않아야 한다. 

 

관계를 통해 나의 결여된 부분을 채우려고 하다 보면 사람들을 수단으로만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순간, 관계 유지를 위한 행위는 인간적임을 가장한 허위가 된다. 그런 거짓 관계로 연결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비록 피상적인 관계에 머문다고 해도 관계의 깊이만큼의 감정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해야 한다. 그래야만 관계로 인한 상처를 피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다. 인맥관리는 그러한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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