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직장생활

나를 괴롭힌 상사가 가장 고맙더라는 '거짓말'에 대해

김성열 2014. 3. 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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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를 들었다.


"예전에 나를 가장 괴롭혔던, 그래서 미웠던 상사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가장 고맙더라"


몇 년에 한번씩은 듣는 얘기다. 표현도 비슷하지만 내용도 비슷하다. 그 괴롭힘은 나의 발전을 위한 선의였으며, 그 미움을 통해서 내가 이만큼 클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좀 더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그냥 대놓고 얘기하면 위의 (말도 안되는) 말은 핑계고 변명이다. 핑계와 변명은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아주 편한 방법이다. "내가 지금 밑의 직원들을 괴롭히는 것은 조직의 발전과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지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도 예전에 고약한 상사가 있었는데 지금 상사가 되어보니 오히려 고맙더라. 그러니까 너희들도 언제가는 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괴롭힘을 나의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때로 감정이 실리더라도 이해해달라. 만약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면 너희들의 그릇이 겁나게 작기 때문이니 지금부터 그릇도 열심히 키우고...뭐 이 정도의 의미다. 쉽게 말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더 비극인 것은 비겁이 비겁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이런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며 누군가를 괴롭힐 것이고 그 악순환은 쉽게 끊기지 않을 것이다. 


합리화를 통한 자기 치료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당시의 괴롭던 심정은 지금 어떻게 해도 치유가 안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상사가 되어 봤지만 이해가 안되는 일을 그 때 그 상사는 나에게 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 상사를 좋은 사람으로 상정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괴롭힘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는 도식을 세우고 미움 대신에 고마움을 택한, 상사의 속내를 깨달은 소박한 현인으로 거듭난다. 거짓과 가식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치유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플라시보 효과(위약 효과)에 머문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가짜 약을 써야할 지도 모른다. 자신의 분노야 말로 올곧게 자기의 것인데, 그 자신을 속이려 드는 것이 더 없이 짠할 뿐이다.



자신을 속이지 말자

미우면 미워하자. 복수한답시고 퇴근길에 쫓아가서 뒤통수 후려 갈길 것도 아닌데 좀 미워하면 어떤가? 괴롭힘을 당했다면 괴롭힘 당했다고 고백하자. 당한 사람이 왜 미안해하고 창피해하는가? 약자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학번이 깡패고 직장에서는 직급이 깡패다. 직급이 낮으면 약자다. 그래서 당한 것 뿐이지 인간이 미천해서 당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약자가 아니었던 것처럼 굴 필요가 없다. 그것은 긍정적인 사고가 아니라 비겁한 사고일 뿐이다. 오히려 약자인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긍정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상사로서의 괴롭힘과 그것에 대한 미움은 어떤 가식과 거짓으로도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말도 안되는 자기 합리화나 핑계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가 행동의 나침반으로 삼아야 할 태도는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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