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의 불안 - 아버지는 강하다, 그리고 세상은 더 강하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국민 동요’ 급의 노래 ‘아빠 힘내세요!’의 하이라이트 가사다. 양성 평등을 저해한다는 구설에 잠시 휘말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아빠’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노래다.(그 밖에는 '아빠와 크레파스' 정도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의 얼굴이 어두운 것을 보고 걱정이 든 아이들이 부르는 힘찬 응원가. 아빠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기특한 격려의 메시지에 밝고 활기찬 리듬까지 더해져서 얼굴에 웃음기가 생기고 힘이 불끈 솟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아빠들에게 때로 무서운 현실로 느껴진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아이들에게는 섭섭한 얘기겠지만, 아빠의 힘든 현실은 열심히 아빠를 응원하는 ‘우리’ 때문이기도 해서다.


‘아버지’라는 이름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이 얹혀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는 단지 의식주 수단의 공급과 유지만을 뜻하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책임은 정서적인 부분까지 포함한다. 가정의 틀이 무너지거나 하면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자녀가 사고라도 치면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는 험담을 듣기 마련이다. 


물론 아버지의 배우자인 어머니도 이 책임을 함께 짊어진다. 요즘에는 의식주를 좀 더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맞벌이를 하는 가정도 많거니와, 육아나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어머니 쪽에서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기여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역할 분담이 있다고 해서 아버지라는 이름에 얹혀있는 책임감의 무게가 덜어지지는 않는다. 아버지라는 이름표를 다는 순간부터 가족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안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젊었을 때는 아이들 얼굴을 보며 힘을 내곤 했었다. 이제 갓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나 유치원 갈 나이의 영유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둔 30대 아버지들에게 아이들이란 힘의 원천이자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되곤 했다. 하지만 40대로 들어서며 현실의 삭막함을 깨닫게 되면 자녀들이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사회에 갓 나온 20대는 물론이고 30대 중반 정도만 해도 더 나은 내일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곤 한다. 하지만 40대에 들어서면 더 나은 내일은커녕 오늘 같은 하루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깨닫는다. 그렇게 깨달아버린 삶의 테두리 안에서는 자녀들에 대한 감상 역시 전과 다를 수 밖에 없다. 



나이 40을 넘어서도 자녀를 포함한 가족은 여전히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이긴 하다. 하지만 가족은 이제 희망의 근거이면서 동시에 불안의 원천에 가까워진다. 30대 아버지가 이제 한참 달음박질에 익숙해진 자녀를 볼 때 내일의 희망을 갖고 힘을 낸다면, 40대 아버지는 늦은 시간 학원에서 돌아오는 자녀를 보며 "저것들을 어떻게 키우나... 나는 몇 년 남지도 않았는데 쟤들은 아직 크려면 멀었네. 시집 장가 갈 때까지 밀어줄 수 있을까?"처럼 지독하게도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어릴수록 아버지를 슈퍼맨으로 알고, 젊은 아버지는 아이들의 동경 어린 눈빛 덕에 강한 아빠로서의 자부심으로 충만하다. 반면에 중년에 들어선 40대 아버지는 알고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이들보다 강하지만 세상은 그런 아버지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아버지들로 하여금 불안의 감정이 들도록 한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두려움의 한가지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현실의 구체적 대상으로 인해 가질 수도 있고, 좋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상황이 다가올 것을 예상할 때도 들게 된다.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구체적 대상이 존재할 때 느끼는 두려움은 '공포'이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불안'이다. 따라서 40대 중년의 아버지가 가진 불안의 정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40대 아버지가 느끼는 불안은 알랭 드 보통이 말했던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느끼는 자격과 지위에 대한 불안처럼 상대적이지도, 키에르케고르가 얘기했던 원죄적 차원의 실존적 불안 같이 거창하지도 않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족의 삶을 제대로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100% 확신할 수 없어서 드는 현실적인 불안이다.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은 20, 30대 때나 할 수 있다. 내일 살아 있다고 해도 그 내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40을 넘긴 아버지들은 안다. 그래서, 매일 매일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 40대 아버지들의 마음에는 비온 뒤 잘 다져진 황톳길처럼 불안이 깔려있다.

Posted by 김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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