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하게 결론부터 말하자. 일은 놀이가 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어도 보통 사람들에게) 일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놀이는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 입에 들어갈 밥을 구하는게 먼저다. 밥을 구한 다음에야 놀이가 가능하다. 나도 안다. 이정도 논리로는 결론이 힘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놀이에 관해 정통한 분(어디서 좀 놀아보신 분?)의 의견을 빌어 결론을 받쳐보려 한다.


네델란드의 문화사학자인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는 <호모루덴스>에서 인간 문화의 본질을 '놀이'에서 찾았다. 이 책에서 하위징아는 규정한 놀이의 특징은 이렇다. 먼저, 놀이는 자발적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을 때 하고, 말고 싶을 때 그만 둘 수 있다. 놀이는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하는 행위라는 얘기다.


놀이의 성격

놀이는 비현실적이다. 현실을 염두한 효용이나 실용, 필요 같은 목적성이 없다. 실제로 놀이를 해서 얻는 것은 별로 없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놀이를 한다면 그때부터는 놀이가 아니라 일이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서 하시는 10원짜리 고스톱은 놀이다. 하지만 담배연기 가득한 하우스에 틀어박혀서 하는 한 판에 수십, 수백만원짜리 '섰다'는 놀이가 아니다.


놀이는 놀이만을 위한 규칙과 시공간이 필요하다. 놀이의 규칙은 특별한 논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저 놀이를 시작하고, 진행하고, 끝내기 위한 요소일 뿐이다. 여기에 놀이를 위한 가상의 시공간이 더해져서 놀이가 실현된다. 앞서 말한 놀이의 비현실성을 실제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놀이만을 위한 가상의 시공간이다.


일의 성격

이제 우리가 하는 일을 놀이와 비교해 보자. 일의 자발성에서부터 한숨이 나온다. 보통 우리가 하는 일은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다. 단편적으로 볼 때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가끔 있다. 하지만 남이 시킨 일을 돈 받고 하는 것이 바로 일(노동)의 본질이다. 일은 하고 싶을 때 하고 말고 싶을 때 말 수도 없다. 일이란 전적으로 조건과 약속에 의해 우리에게 강요된다.


다음으로, 일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현실을 벗어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명확한 목적을 갖고 있으며 반드시 얻어내거나 달성해야 할 것이 있다. 무조건 현실과 부합해야 하는 것이 일의 본질이다. 마지막인 규칙과 시공간은 일에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규칙과 시공간은 철저히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이 점이 놀이의 규칙이나 시공간이 갖는 비현실적인 성격과의 차이다.


일도, 놀이도 열심히

여기에 하나를 더 하자면, 일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놀이는 그렇지 않다. 일에는 완료와 목표 성취의 책임이 항상 따라다닌다. 당장 내가 책임지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놀이는 책임질 일이 없다. 놀이에 책임이 따라 온다면 그것을 놀이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언젠가 철학자 강신주 선생이 아이들이 게임을 덜하도록 하는 방법을 말했다. 게임에서 특정한 점수한 목표를 달성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방법이다. 책임이 생기면 놀이도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일이 놀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바다. 간혹 일을 놀이처럼 하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괜한 망상 심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은 그냥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 게다가 일은 우리의 삶에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지 않은가. 일이 놀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놀이처럼 일하지 못한다고 괜한 강박 갖지 말자. 일도 열심히, 놀이도 열심히 하면 충분하다.

sungyoul.kim73@gmail.com




Posted by 김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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