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40대 남자

40대 남자들, 프로갑질러가 되다

김성열 2019. 7. 2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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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주역으로 떠오른 40대 남자들

‘갑질이라는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13년 경이다. 어느 대기업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라면이 설익었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폭행한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임원을 ‘라면 상무’라고 조롱했고 가해자가 재직한 기업이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즈음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갑질이라는 말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반 후에 ‘갑질’이 일상의 말이 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12월,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있던 조현아 씨가 저지른 일명 ‘땅콩 회항 사건’이다. 조현아는 곧 이륙하려던 비행기 안에서 승객에 대한 서비스가 부실하다는 핑계로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동반한 횡포를 부렸고 결국에는 이륙을 준비하던 비행기를 돌려 승무원을 내리도록 했다. 회장의 딸이라는 배경과 부사장이라는 직급을 등에 업고 직원뿐만 아니라 승객들까지 ‘아랫것들’로 대하는 갑질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땅콩 회항 사건 이후에 조현아의 어머니, 여동생, 남동생까지 지독한 갑질로 유명세를 떨친 바 있다.


원래 갑질이라는 말은 계약상 ‘갑’의 위치에 사람이나 집단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을’에 대해 불공정하고 부조리한 횡포를 부리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던 것이 이런 사건들 이후로 갑질은 명문화된 계약 관계만이 아니라 일상의 관계에서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이제 갑질은 서열이나 계급이 조금이라도 구분되는 곳이면 어디에라도 쓸 수 있는 말이 되었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상사와 부하직원, 선배와 후배, 교사와 학생, 서비스나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과 판매하는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과 같은 일상의 관계들에서 갑질이 구현된다. 그리고 일상의 갑질 분야에서 40대 중년 남자들이 주된 ‘갑질의 가해자’로 떠올랐다. 


2017년 9월, 경찰이 100일 동안 ‘갑질 횡포 특별단속’을 벌였다. 그 단속에 자그마치 6,000여 건의 갑질이 적발되었는데 가해자의 57.7%가 40대~50대였으며 (40대 29%, 50대 28.7%) 그중 남성이 89.6%를 차지했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갑질의 절반 이상을 중년의 남성들이 저지르고 있다는 얘기다. 나름 올바르게 살아왔다고, 사회 통념에 위배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자부하는 대부분의 40대 남자들은 억울할만하다. 몇몇 성숙하지 못한 인간들이 저지른 짓 때문에 갑질의 대표 세대 취급을 받는다니 속이 터질 노릇이다. 하지만 그들의 결백함은 주관적인 판단의 결과일 뿐이다. 자신의 행동이 갑질인지 아닌지 객관적으로 판단을 못했다면 그들이 말하는 결백함은 일방적인 주장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자신이 갑질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갑질을 당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66.2%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갑질을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25%만이 그렇다는 답을 했다. 매일경제가 실시한 같은 내용의 설문에서도 피해 경험과 가해 경험은 각각 88.6%와 33.3%로 피해 경험과 가해 경험에서 차이가 있었다. 당한 사람이나 목격한 사람에게는 갑질로 보이는 행동이라도 갑질을 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일부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도매금으로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신이 한 행동을 다른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몰라서 갑질을 저지를 수도,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설문 결과를 보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갑질을 했을 확률 역시 40대~50대 중년 남자가 가장 높았다.


갑질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배경은 권력이다. 권력이 없거나 상대보다 작은 권력을 가졌을 때 갑질은 불가능하다. 엄밀하게 따지면 권력은 갑질에 필요한 도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을 갑질에 쓰느냐 쓰지 않느냐는 어디까지나 권력을 가진 당사자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권력에 조종을 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상에서도 평소에 나긋하고 온화했던 사람이 완장을 차고 나서 돌변해 버리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그다지 드물지도 않다. 사회생활하면서 과장 달더니, 부장 달더니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는 식의 평판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하기 마련이다. 이쯤 되면 권력이 그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그 의심은 매우 합리적이다.



갑질의 과학적 해석

권력을 가졌을 때 행동과 사고의 체계는 평소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권력을 가졌을 때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밝혀졌다. 197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교도관과 수감자의 행동과 심리를 관찰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짐바르도 교수는 가상을 감옥을 만들고 24명의 대학생들을 모집해 각각 교도관과 죄수 역할을 분배했다. 실험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교도관 역할을 하는 실험 참가자들이 죄수 역할을 하는 참가자들에게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실험에 앞서 교도관 역할을 하는 참가자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교도관은 죄수들에게 기합을 주거나 더럽고 지저분한 일을 시켰고 연구자들이 자리를 비운 시간에는 강압의 정도가 심해졌다. 결국 교도관과 죄수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고 실험은 통제 범위를 벗어나 버렸다. 그 결과 짐바르도 교수는 2주로 예정했던 실험을 6일 만에 종료하고 말았다. 이 실험은 권력이 구조화된 환경이 사람의 행동과 사고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된다.


짐바르도 교수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오래된 말과 맥이 닿는다. 물론, 권력이 사람의 행동과 사고를 오로지 나쁜 방향으로만 몰아간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실제 스탠퍼드 감옥 실험에서도 교도관 역할을 한 참가자 중 40%는 가학적 행위를 거부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도 상대적으로 권력이 있는 위치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갑질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할 뿐만 아니라 도덕률이나 규범에 따라 행동과 사고를 규제한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햄버거를 점원에게 던져버리거나 하면 그 뒤는 진상, 갑질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돈 많고 권력 높은 사람들의 횡포를 보면서 혀를 차고 욕을 했던 자신이 그들과 같은 저급한 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것을 알면서도 순간적으로 '욱' 한다. 그 충동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일랜드의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의 심리학 교수이자 신경과학자인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은 자신의 책 『승자의 뇌(The Winners Effect)』에서 권력을 행사의 목적과 방식에 따라 구분했다. 로버트슨 교수에 견해에 따르면 권력은 S-권력과 P-권력으로 구분되는데, S-권력은 ‘사회적(Social) 권력’이고 P-권력은 ‘개인적(Personal) 권력’을 의미한다. S-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사회나 집단, 조직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권력을 사용한다. 반면에 P-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권력을 자신이 이기는 데 사용하며 ‘갑’의 위치에서 누리는 쾌감을 즐긴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의 구분법에 따르면 자신의 가진 권력으로 심리적인 만족감, 승리의 쾌감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이 갑질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권력을 매우 강력한 약물이라고 말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권력을 잡게 되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출되고 그것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도파민은 운동, 동기부여, 보상과 처벌, 기억, 학습, 기분(정서) 등에 관여하며 특히 쾌감과 즐거움에 관한 신호를 전달하여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쉽게 말해 권력은 사람을 더 의욕적이고 긍정적이게 만들어 행복감에 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쾌감과 즐거움에 매달리게 되면 부작용도 발생한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는 너무 많은 권력은 오히려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고 시야를 좁게 만들며 모든 상황을 본인이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도록 만든다고 설명한다. 권력의 남용이 사람을 독선적이고 오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독선과 오만으로 만족감과 우월감을 누리는 데 집착하는 일이 바로 갑질이다.


이안 로버트슨 교수의 이러한 견해를 세부적으로 입증해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캐나다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의 연구진은 권력이 거울 뉴런계(Mirror Neuron System)의 활성화를 낮춘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미국 심리학협회지에 게재했다. 이탈리아의 신경생리학자인 지아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가 1930년 대에 발견한 거울 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거나 이야기를 듣거나 할 때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할 때처럼 반응하는 뉴런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모방하거나 감정이나 상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거울 뉴런 덕분이다. 


윌프리드 로리에 대학교 연구진의 실험은 간단했다. 참가자들을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게는 권력을 가졌을 때의 기억을 경험을 글로 쓰게 하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권력에 복종한 경험을 글로 쓰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그룹에게는 단지 연구 참여 전날 무엇을 했는지 관해 글을 쓰도록 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에게 고무공을 움켜쥐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여준 다음 거울 뉴런의 신호를 측정했다. 측정 결과 권력을 가졌을 때의 경험을 기록했던 그룹의 경우 거울 뉴런의 반응 신호가 내우 낮았고, 권력에 복종한 경험을 쓴 참가자 그룹은 거울 뉴런의 반응 신호가 높았다고 한다. 연구를 주도했던 신경과학자 수크빈다르 오비(Sukhvinder S. Obhi)의 표현을 빌자면 '사람이 권력을 인지할수록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권력이 공감 능력을 앗아간다는 전제를 대입해 보면 우리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갑질들이 왜 하나 같이 그런 비루한 모양새인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권력 행사를 빙자한 분노 표출

그런데 40대~50대 중년 남성들의 갑질은 뭔가 어색한 부분이 있다. 그들이 저지르는 일상의 갑질은 권력을 배경으로 한다기에는 그 권력의 무게나 권위가 너무 하찮다. 가만히 살펴보면 중년 남성들이 일상에서 저지르는 갑질은 별 것 아니다. 나이를 앞세운 ‘꼰대질’, 조직에서의 직위를 등에 업은 ‘악덕 상사질’, 서비스 이용자나 상품 구매자 지위를 내세운 ‘진상질’ 정도다. 높은 자리에 있고 가진 것도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갑질에 비하면 유치한 수준의 것들이다. 


대한항공 조현아의 땅콩 회항 사건, 여동생인 조현민의 광고대행사 직원에 대한 폭언, 한국미래기술 회장인 양진호의 직원 폭행과 부조리한 행동 강요, 종근당 이장한 회장의 운전기사 욕설 같은 굵직한 사건들의 경우 갑질을 하는 주체가 을에 대해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었다. 갑과 을의 권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을의 입장에서는 대응할 여지도 없이 고스란히 갑질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소시민에 속하는 일반적인 중년 남성들이 가진 권력은 권력이라고 하기에 너무 소소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중년 남성들의 갑질은 유난히 눈에 띈다. 고만고만한 권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갑질의 행태는 집요하고 폭력적이다. 그들의 갑질에는 권력보다 분노라는 감정이 더 많이 드러난다.


울산 맥도날드 햄버거 투척 사건만 봐도 그렇다. 세트 음식을 주문했는데 단품이 나왔다는 이유로 종업원에게 햄버거를 집어던진 이 사건에서 권력이 작용할 부분은 거의 없다. '거래'라는 행위의 실체는 서로 필요한 것을 맞바꾸는 것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데 있어서 갑과 을의 위계질서가 생길 이유는 없다. 거래에 위계질서가 생기면 오히려 불공정한 거래가 될 공산이 크다. 소금과 옷감을 맞바꾼다면 서로가 만족하는 양을 합의하면 그만이지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질 일이 없는 것이다. 비록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마케팅 측면에서 재화를 구매하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갖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 권력이라기보다는 구매자에 대한 판매자의 배려와 최선을 칭하는 말에 가깝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은 '손님을 왕처럼 잘 배려하고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하겠다'는 말이지 손님이 왕처럼 절대 권력을 갖는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구매자가 판매자에 대해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거래 행위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일 뿐이다. 판매자를 향해 음식을 집어던지고 판매자는 그것을 감수해야 할 정도의 절대적인 권력이라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실제 햄버거를 던졌던 40대 후반 남성 역시 회사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 상태에서 한 순간에 감정이 폭발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런 식의 충동적인 행위를 동반한 갑질은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직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사의 갑질 중에도 권력과 거의 상관없는 것들이 많다. 일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하 직원에게 욕설을 하거나 펜이나 서류를 집어던지는 행동은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만든 직위 체계에서 발생하는 권력과 무관하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욕설부터 내뱉는 행동 역시 갑이 가진 권력의 행사로 보기에는 거리가 있다. 일상적인 갑질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년 남성들의 폭력적인 갑질은 '권력의 과도한 행사'가 아니라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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