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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읽고 생각하기 49

에티카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지음, 조현진 옮김, 책세상, 2006)

에티카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지음, 조현진 옮김, 책세상, 2006) 이 책을 읽은 것은 '감정'에 대한 궁금함 때문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논한 철학자가 많긴 하겠지만(많긴 하지만) 스피노자가 그나마 익숙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스피노자라는 거대한 산을 단번에 오를 수는 없었다. 뭇사람들이 스피노자는 원문을 읽기 전에 해설서를 먼저 읽는 것이 낫다고들 했다. 산을 오르기 전에 산의 정보를 알려 줄 지도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의 전문(全文)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라는 산은 지도조차 험난했다. 스피노자를 알기 위해서는 당대의 철학 사조, 데카르트 철학과의 관계 따위를 알아야 했다. 스피노자와 관련한 정보를 찾아가며 세 번 정도를 읽고 나서야 희미하게나마 산의 모양새가 보이는 듯 했다. ('보였다..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14)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14) 이 책은 지난 55년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빠짐없는 기록이 아니라 내가 그 시대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실들에 대한 기록이다. – 에필로그 中 는 작가 유시민(그는 요즘 그를 이렇게 불러주길 바란다)이 지난 55년 동안의 대한민국 역사에서 자신이 주목한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역사의 사실'을 기록했으니 역사서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건조한 책은 아니다. 역사가의 의무는 사실의 정확함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연구 주제나 방향성을 가진 해석이 사실과 관련되어 있음을 그려내야 한다는 E.H.카의 견해를 놓고 봐도 이 책을 명백한 역사서로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과거 사실에 대한 그의 시각이 현재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

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4)

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4) 책 제목부터 신이 난다. 글줄기도 시원시원하고 내용도 명쾌하다. 진보는 싸가지가 없어서 욕을 먹으며 그 싸가지 없음은 우월감에서 나온다. 우월감의 대상은 여당 뿐만 아니라 민심까지 포함한다. 결국 우월감은 소통을 방해하며 무능으로 귀결된다. 극복하는 방법은 존중이다. 경쟁자를 존중하고 서비스의 수혜자(민심)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일패도지의 제로섬 게임을 극복할 수 있는 타협을 끌어낼 수 있다. 무력혁명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면서, 즉 선거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면서 일반 유권자들의 정서를 무시해서 어쩌자는 건가. 진보적 지식 엘리트는 자신의 학벌 자본을 이용해 경제적으론 풍요를 누린다. 당위만을 놓고 보자면 진보가 보수에 비해 멋져 보이는 데다..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문학사상사, 2005)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문학사상사, 2005) 제목이 말하듯이 저기 콜롬비아 구석에 붙은 마콘도에 터를 잡을 부엔디아 가문은 5대 100년 동안 고독했다.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새로운 낙원을 찾았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부터 5대를 걸치는 동안 부엔디아 가문은 고독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는 사람 투성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결국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가문의 종지부를 찍는다. 부엔디아 가문이 고독했던 이유는 그들이 철저한 타자(他者)였기 때문이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터를 잡은 마콘도는 그에게 이름을 부여받았을 뿐, 이름이 없었던 그 곳의 입장에서 그는 외지에서 온 타인이었다. 또한 그는 서서히 밀려드는 새로운 문명과 이..

고향 (이기영 지음, 문학사상사, 1994)

고향 (이기영 지음, 문학사상사, 1994) 그의 문장은 멋스럽지만 가식이 없다. 넘실거리는 생생함이 있다. 잘 익은 나락, 고즈넉한 오후의 부락 어귀, 달빛이 쨍한 여름밤 밭둑, 비늘처럼 반짝이는 개천의 풍경을 열두폭 병풍처럼 눈 앞에 훤히 펼친다. 그런 글재주로 농촌의 안락함과 따스함만을 그렸다해도 아주 좋은 글이 되었겠지만 은 그렇지 않다. 그 풍경 속에서 움싯거리는 사람들은 결코 서정의 주인공들이 아니다. 기아에 전복되어버린 노동의 가치와 극복을 선택할 수 없는 환난과 비참, 그 안에서 아둥거리는 힘 없는 사람들의 지난한 삶, 이론과 지성의 무력함에 힘이 빠진 자발적 선각자들의 절망과 갈등이 풍경의 속살이다. 자본이 득세하면서 가난과 노동은 대를 잇는 순환의 출발점에 선다. 토지의 신성함과 노동의..

시가 나에게로 왔다 (김용택 지음, 마음산책, 2001)

시가 나에게로 왔다 (김용택 지음, 마음산책, 2001) 나는 시를 모른다. 쓸 줄도 모르고 읽을 줄도 모른다. 그래서 책장에 드문드문 보이는 시집들에는 손이 잘 안간다. 그저 몇몇 간드러진 표현에 매력을 느끼고 흠~ 하며 시 한편 알게 된 것이 좋다고 느끼는 정도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시가 궁금해졌다. 생각과 논리가 아닌 정서와 감정을 텍스트로부터 느끼고 싶었다. 나는 소심했다. 뭣도 모르는 채로 황지우에게, 기형도에게, 김수영에게, 장정일에게 다가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김용택 시인이 사랑하는 시라면 나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골랐다. 말이 좋아서 그렇지 베스트 음반집 사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 그런데 시작부터 황지우다. 솟아오르려는 소심함을 무릅쓰고 읊조려본다. 오늘 나는..

쇼펜하우어 인생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박현석 옮김, 예림미디어, 2008)

쇼펜하우어 인생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박현석 옮김, 예림미디어, 2008) 이 세계를 가능한 것 중의 최악으로 여기며 인간을 맹목적인 생명충동이라는 의지에 예속된 '내부의 시계 장치로 작동하는 인형'에 불과하다고 본, 근대 이후 염세주의의 맹아였던 쇼펜하우어가 인생과 행복을 말하는 것은 무척이나 낯설고 얼떨떨한 일이다. 그는 삶을 고통일 뿐이라고 했으니 그가 말하는 인간의 삶에서는 행복이 불가능하다. 항간에서는 자살옹호론자로까지 일컬어지는 그이니 '행복'이라는 말은 애초부터 그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나는 쇼펜하우어가 이런 글을 쓴 이유나 의도에 대해서 굳이 이해하려 노력하진 않았다. 다만 다음처럼 염세주의자의 행복론을 인식했다. '살아봤자 좋을 것 없는 인생이지만 마지못해 산다면, 그나마 조금이..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2005)

공중그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2005)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여겼던) 강박과 열등감, 피해의식에 삶이 뒤틀려버린 몇몇의 환자가 '입 다물고 주사부터' 놓길 심하게 즐기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만난다. 이라부는 치료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치료라고 부를만한 일도 하지 않지만 능구렁이 담 넘듯이 환자의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당사자들은 당황한다. 100킬로그램은 족히 되는 큼직한 이라부가 그들의 안으로 밀고 들어온 통에 자신은 자신의 밖으로 밀려난다. 저항할 수도 없다. '왜 그런지 저항할 기력마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밖으로 밀려난 그들은 가면에 가려져 있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문제를 인식한다. 그리고 (이라부와는 별 관계 없이)..

변신.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1998)

변신.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1998) 인간은 스스로와 타인을 기만한다. 자신의 합리화를 위해, 이익을 위해, 권위의 보존을 위해 기만하고 기만 당한다. 기만을 하는 쪽에게나 당하는 쪽에게나 궁극적으로는 살기 위한, 때로는 살아남기 위한 방편의 하나다. 인간에게 생존의 욕망은 예의 간절하고 절박하다. 그래서 인간의 기만은 강압과 폭력의 모양새를 취하기 일쑤다. 인간은 그렇게 타인과 자신을 강제해 기만의 산물을 보편적인 행위 양식으로 규정하고 타협을 통해 서로의 생존을 용인한다. 기만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설사 죽음으로 기만의 사슬을 끊으려 든다 해도 그 죽음조차 기만의 산물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을 외면할 수 없기에 죽음조차도 기만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다. 이미 기..

법은 왜 부조리한가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와이즈베리, 2012)

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 철학, 통계학, 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와이즈베리, 2012) 이 책의 제목에 쓰인 '부조리'는 '부도덕'이 아니라 '불합리'를 말한다. 법은 왜 자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결론을 내며 상식에 어긋하고 합리적이지 못한가에 대한 물음이 이 책의 소재다. 저자는 그것들을 '부조리'라고 했는데 사실 쉽지 않은 말이긴 하다. 차라리 저자가 책에서 썼던 구절이 이 책의 목적하는 바를 아주 잘 표현한다. "왜 우리의 형법은 도덕적 정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형법과 도덕적 정서의 불일치에 대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범주에서 논한다. 1.법은 왜 상생 거래를 거부하는가 2.법은 왜 허점투성이인가 3.법은 왜 그렇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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