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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14)

김성열 2014. 9. 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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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14)


이 책은 지난 55년의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빠짐없는 기록이 아니라 내가 그 시대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실들에 대한 기록이다. – 에필로그 中


<나의 한국현대사>는 작가 유시민(그는 요즘 그를 이렇게 불러주길 바란다)이 지난 55년 동안의 대한민국 역사에서 자신이 주목한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역사의 사실'을 기록했으니 역사서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건조한 책은 아니다. 역사가의 의무는 사실의 정확함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연구 주제나 방향성을 가진 해석이 사실과 관련되어 있음을 그려내야 한다E.H.카의 견해를 놓고 봐도 이 책을 명백한 역사서로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과거 사실에 대한 그의 시각이 현재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통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놓고 보면 개인의 회고록 수준은 넘어섰다. 


물론 이 책을 어떻게 여기냐는 것은 읽는 이의 자유다. 나에게 이 책은 역사서라기 보다는 일종의 교양서다. 내가 전혀 알지 못했거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과거의 사실들을 제법 꼼꼼하게 정리해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교양서로서 역할은 충분하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자 미래의 원인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왜 이런 모습인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현재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과거를 정리해 소개한 책이라면 통찰과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교양서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게다가 이 책은 지난 과거를 살아온 한 생활인의 기록이다. 학문적 연구의 결과도 아니고 교과서적인 역사 기술이 아닌 일반인과 비슷한 삶을 사는 작가 유시민이 본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과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서 바라본 과거, 그 나이대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음직한 과거에 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삼촌이, 어머니가, 고모가 하던 얘기와 출발점이 다르지 않기에 심각하게 굴지 않고도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뭇사람들이 할 수 있는 회고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단편적인 사실의 정렬과 감상의 전달이 아니라 사실과 사실의 상호관계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경제, 정치, 문화, 통일, 사회 분야로 챕터를 나누어서 사실을 기록해 그 사실들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마도 이런 점이 이 책을 단순한 회고록이 아닌 역사서에 가깝게 여기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몫이 사실의 기록이라면 그 사실을 통한 통찰은 읽는 이의 몫이다. 같은 내용을 읽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원인을 해석하고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그런 해석과 이해의 깊이를 더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E.H.카<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과정일 수는 없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 양자를 더 깊게 이해시키려는 데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과거의 사실들이 어떤 식으로 현재에 원인을 제공하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할 근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뜻깊은 일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런 의미로 다가서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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