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문서를 작성하려고 앉아 있으면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다. 한석봉처럼 일필휘지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머릿속에서는 이런 저런 내용들이 맴을 도는데 어디서부터 풀어나갈지 갈피를 못잡아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써보기나 하자며 키보드를 벗삼아 머릿 속의 생각을 화면에 새겨 넣어보지만 몇 줄 안가서 백스페이스 키를 타닥거리기 일쑤다.
이는 '글쓰기'라는 작업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기, 에세이, 소설, 기사, 논문, 기획안, 보고서, 편지(이메일) 같은 것들은 모두 글이다. 하지만 그 성격은 제 각각이다. 이 모든 것을 그냥 막연하게 '글쓰기'라고 생각하면 당장 써야할 글의 형식과 성격을 정하지 못한다. 글의 형식과 성격이 정해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아무리 풍부한 자료와 정보가 있어도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업무와 관련한 글은 그 내용이 감정적이거나 정서적이지 않다. 업무와 관련한 글은 최대한 사실에 부합해야 하고(실현 가능해야 하고) 자료와 정보에 기반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글이어야 한다. 정리가 잘 될수록 그런 성격들이 잘 드러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글을 쓸 때 유용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목차잡기'다.
목차의 각 항들은 제시할 사실, 정보, 주장, 의견 따위의 표제가 된다. 각 항목들은 상세 내용들의 성격에 따라 항목을 정할 수도 있지만 육하원칙을 기준으로 정하면 편하다. 그리고 항목의 순서는 항목의 중요성이나 업무의 흐름 따위를 기준으로 읽는 이의 이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정렬한다. 이렇게 항목들이 완성되면 각 항목의 하위에 그 항목에 해당하는 상세한 내용들을 집어 넣기만 하면 된다. 간단하게 말하면 아래와 같다.
1. 상세 내용들의 성격에 따라, 혹은 육하원칙에 기준해 항목을 만든다.
2. 이해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항목의 순서를 정한다.
3. 각 항목에 해당하는 상세 내용을 넣는다.
예를 들어 '시스템 구축 사례집 제작 기획안'을 작성한다고 하자. 일정이나 목표(목적), 사례집의 형태와 구성, 담당자 등의 기반 자료들이 모두 구비되었다고 가정하면 그때부터는 그것들을 어떻게 늘어놓느냐가 글쓰기의 당면한 문제가 된다. 목차를 잡는 것은 기술할 정보나 의견 따위를 그 내용의 성격에 따라서 무리(Group)를 지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1. 제작 목적
2. 사례집의 구성
3. 업무담당자
4. 제작 일정
5. 제작 절차
6. 배포 방안
이 정도만 나와도 일단 숨통이 트인다. 육하원칙에 거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무엇'을 만드는지는 기획안의 제목으로 충분히 알 수 있고, '어디서' 만드는지는 '업무담당자'의 내용으로 알 수 있다.) 이제 내용의 성격에 따라서 수집된 자료와 정보들을 그 하위에 집어넣는다. 만약 그 내용이 복잡하거나 많으면 하위 항목을 만든다. 이 때는 굳이 목차의 성격을 따를 필요는 없다. 목록이면 충분하다.
1. 제작 목적
① 영업 측면
② 홍보 측면
③ 관리 측면
2. 사례집 구성
① 개요
- 제작물 명칭
- 내용(컨텐츠)
- 형태
- 제작 방식
- 담당 부서
- 제작 기간
② 목차
③ 페이지 구성
④ 사례 리스트
3. 업무담당자
① 사내
② 외주
4. 제작 프로세스
5. 제작 일정
① 1차
② 2차(사례 추가)
6. 배포방안
① 온라인
② 오프라인
표제 항목에 추가로 상세 항목이 더해지면서 목차가 풍성해지고 그 내용이 더욱 명확해졌다. 이제 상세 내용만 깔끔하게 넣으면 되니 문서 작성의 절반은 끝난 셈이다. 이렇게 목차를 잡아가다 보면 생각이 정리될뿐 아니라, 때로는 내용의 부족함이나 자료의 부실함이 드러나기도 해 문서를 더욱 알차게 작성할 수는 있는 뜻밖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문서가 형식으로만 치우쳐서는 안되지만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형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모니터 앞에서 멍때리지 말고 먼저 목차를 잡는 버릇을 들이자. 이것도 경험이고 학습이라 자꾸 하다 보면 나만의 글쓰기 비법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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