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직장생활

호칭파괴, 그 달달한 떡밥

김성열 2014. 7. 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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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내에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구축하여 소통을 원할히 하고, 조직원의 창의성을 배가하며, 조직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호칭파괴만한 것이 없다고들 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들(삼성화재, 아주그룹, 카카오톡, CJ그룹, 제일기획, SK 등등)이 호칭파괴, 연공서열 파괴를 들고 나선지 오래다. 그 영향력도 대단하단다. 관련한 기사를 보면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니 못할 것이 없다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원할한 커뮤니케이션과 창의성이 간절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과연 호칭을 파괴하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고 창의력이 봇물처럼 터져나올까를 궁금해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호칭파괴를 제대로 하고 연공서열 파괴를 제대로 했을까를 살펴보는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제대로된 파괴 작업도 없이 효율이 좋다고 부르짖는다면 뭔가를 부풀리거나 오도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길동 대리와 마이클

호칭파괴의 형태는 시행하는 기업마다 조금씩 다르다. 공통적인 것은 이름과 직함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호칭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때는 (멋져 보여서 그러는건지 심오한 철학적 동기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영어 호칭을 쓰는 경우가 많다. '홍길동 대리'가 '마이클'이 되고 '성춘향 과장'이 '엘리자베스'가 되는 것이다. 때로는 직급 대신에 '매니저(SK)', '프로(제일기획)' 같은 통일된 직함을 쓰기도 한다. 이때는 굳이 영어 호칭을 쓰지 않고 이름이나 성 뒤에 직함을 붙인다. 그외에도 별명을 부르거나 이름 뒤에 ~님, ~씨를 붙이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호칭을 파괴함으로써 기존의 수직적 구조를 깨버린다는 것이 '호칭파괴'의 목적이자 의의다. 하지만 호칭을 바꾸어 부르는 것만으로 수직적 구조가 사라진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마이클'은 '홍길동 대리'를 대신하는 호칭이다. '마이클'에는 홍길동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홍길동의 직급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실제로 직급이 살아 있다면 이는 호칭을 파괴했다기보다는 기존 호칭을 대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이클과 엘리자베스를 목놓아 불러봤자 연공서열의 수직적 구조가 살아 있다면 호칭파괴는 단순한 '새로운 호칭 제도'일 뿐이다.


의사결정의 구조

그래서 SK나 제일기획처럼 직급과 직위마저 없애거나 통일하는 경우도 있다. 수직적 구조가 살아 있는 이상 호칭파괴는 그저 이름 부르는 방식의 변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급이나 직위를 없애는 것도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책임과 권한을 구분하는 의사결정 구조가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프로지만 박프로가 이프로에게 결제를 받고, 같은 매니저지만 이매니저가 최매니저에게 보고를 한다면 둘의 관계는 수평적이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례로 CJ의 경우(CJ는 직급 호칭을 없애고 이름 뒤에 '님'을 붙인다고 함) 승진을 해도 티가 안나서 아쉬워하는 케이스가 많아 승진 후에 한 달 정도 ~대리님, ~부장님이라고 불러주기도 한단다. 이런 것을 호칭파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직적 구조 뿐만 아니라 호칭도 뻔히 살아 있는데 무슨 호칭파괴를 했다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호칭파괴, 그 달달한 떡밥

직급을 빼고 자연스럽게 호칭을 부른다고 해서 호칭파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수직적 관계의 호칭 방식을 파괴하려면 일단 수직적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먼저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의사결정 구조마저도 같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 자체가 수평적이 되면 호칭은 그에 따라 갈 수 밖에 없다. 호칭을 파괴한다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구축했다고 해서 수평적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발상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창의성의 배가를 위해서, 조직의 유연성을 위해서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것은 반길만한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앞뒤가 바뀌었더라고 해도 몇몇의 효율은 건질 것이다.(물론 비효율도 생긴다.) 하지만 마치 호칭파괴가 기업 내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궁극적인 해결책인 것처럼 오도해서는 안된다. 호히려 호칭파괴를 깊게 파고 들어가면 전통적인 조직의 구조를 모두 흔들 수 밖에 없는 핵심에 다다른다. 그 핵심에 이르지 못한 호칭파괴는 한번쯤 시도하고 싶은 '달달한 떡밥'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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