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직장생활

벤처정신은 아무 데나 쓰나

김성열 2014. 7. 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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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발전의 궤도를 균일하게 그리지 않는다. 운이 맞고 전략이 좋아서 한동안 상승 궤도를 그리다가도 오르락 내리락 부침을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러한 부침은 달갑지 않다. 그 각도가 크든 작든 일관성 있는 상승 궤도를 추구하는 것이 기업주의 입장이다. 그 궤도가 원하는대로 그려지지 않았을 때를 기업주는 '위기'라고 의식한다. 꼭 그 궤도가 하향선을 그릴 때만이 아니다. 때로는 궤도의 상승 각도가 작아졌을 때를 위기라고 의식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위기를 떨쳐내기 위해 초심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벤처정신의 위력

업력이 그리 길지 않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중소기업에서의 초심을 유행하는 단어로 하면 '벤처정신'이다. 이 말에는 도전정신, 열정, 자신감 같은 것들이 모두 응집해있다.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한번 상승의 나래를 펴기 위해 벤처정신만한 것이 또 없다. 게다가 그 벤처정신은 지금을 있게 해준 원동력이기 때문에 별도의 검증 없이도 신뢰가 가능하다고 여겨지기 일쑤다.


하지만 삼삼오오 모여서 회사를 시작한 그 때의 감정을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해 이입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결정이 아니다. 기업 초창기 시절은 다 같이 죽거나 다 같이 살거나 하는 극단적이면서도 명쾌한 상황이다. 실패하면 모두가 길거리에 나앉게 되고, 성공하면 모두가 축복을 누릴 수 밖에 없는데다가 조직구조의 탄탄함이나 전략의 치밀함, 물리적 자원의 풍부함 따위를 기대할 수 없기에 벤처정신은 행위와 판단의 동기로서, 실질적인 자원으로서 역할이 크다.




철지난 벤처정신 

직원의 수가 늘어나고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그러한 책임은 조직의 구조에 따라 단계적 구분히 확연해질 뿐만 아니라 총체적인 책임의 규모도 완전히 달라진다. 한번의 대단한 실패로 수십명이 직업을 잃고 몇년을 일구어온 회사가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감과 열정, 도전정신을 주된 무기로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게다가 사세 확장을 위해, 재도약을 위해, 위기 극복을 위해 벤처정신 운운하는 것은 듣기에 따라서는 책임을 골고루 나누어 지자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사업 초기를 지난 기업에 몸담은 사람들은 꿈만 먹고 살지는 않는다. 그런 직원들에게 벤처정신을 요구하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경영을 책임지는 윗사람들이 지겠다고 장담해야 한다. 도전정신과 열정, 자신감은 직원들에게 주고 책임은 윗사람들이 가져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모든 것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직원들에게 함부로 '철지난 벤처정신'을 주입하려 들어서는 안된다. 


벤처정신보다 더 필요한 것

직원원들이 원하는 것은, 일을 할 때 정말 필요한 것은 치밀한 전략과 명확한 목표다. 덩치는 덩치대로 커진 기업이 과거의 성공을 벤처정신의 결과로 한껏 미화하고 지금도 그것을 유효한 원동력으로 취급하려는 것은 어쩌면 치밀한 전략과 명확한 목표가 없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더구나 일부만 알고 있는 그 때의 그 벤처정신을 지금의 직원들과 공유한다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모험은 극단적 희생을 무릅쓰고 하는 선택이다. 극단적 희생을 일상화하는 기업이라면, 그런 모험이 항상 필요한 기업이라면 그 기업은 업력이 10년이든 20년이든 전혀 발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벤처정신을 함부로 말하지 말자. 벤처정신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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