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의 불안 – 고용불안(1) 세상은 넓고 내가 할 일은 적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초등학교(40대에게는 ‘국민학교’) 시절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른이 되면 마음껏 콜라를 사먹어야지!” 5학년다운 소박한 소원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직장을 갖고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갈래를 더 뻗어나가서 나의 아버지처럼 직장인이 되어서 월급을 받아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라는 데까지 닿았다. 비록 어린 나이었지만 그 불안은 제법 크게 느껴졌다. 딱히 철이 든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나 핏줄, 유전자의 공유 차원에서 내 아버지를 공감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보편적 지위와 그 지위에 부과되는 역할과 책임을 어쩌다 엿보게 된 것 뿐이었다.
나의 집은 그렇게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편도 아니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 모두 돈을 버셨지만 쪼들릴 때가 더 많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버지를 봤으니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겁이 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싶다. 다행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나 역시 인간 종에 속했기 때문인지 나이가 들면서 그 기억은 옅어졌다. 남들처럼 학교 다니고, 취직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그렇게 살아오다 지금 40대를 지나다 보니 어릴 적 그때가 문득 문득 생각난다. 묘하게도 그 때 가졌던 불안과 지금의 불안이 거의 다르지 않다. 아마도 어렸던 내가 아버지의 불안을 제대로 보았을 지도 모르겠다.
40대는 20대, 3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도 얼마 남아있지도 않다. 같은 40대라고 해도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긴, 이제 제대로 된 링에서 뛰는 것은 정말 천운이 따라야 10~15년 정도다. IMF 외환위기 때 45세가 사실상 정년이라는 뜻으로 ‘사오정’이라는 새로운 말이 생겼다. 당시와 지금이 완전히 같진 않지만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며, 그만큼 은퇴 시기도 빨라졌다. ‘쉰여섯 먹은 직장인은 도둑’이라는 뜻인 ‘오륙도’까지는 갈 것 없다. 40대 후반 입장에서는 이제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오죽하면 강준만 교수가 ‘우리 사회는 조로(早老)를 강요한다’는 말까지 했을까.
피고용 상태의 유지에 대한 불안
물론, 돈을 버는 것이 아버지 역할의 전부는 아니다. 어머니가, 혹은 자식이 대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역할이 아버지에게는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아버지’라는 말에는 이미 그러한 가부장적 프레임이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런 프레임에 가족에 대한 애정, 개인의 자아존중감(자존감)까지 겹치기 때문에 아버지들은 고용에 대해 엄청나게 민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일자리는 내일을 확신할 수가 없다. 지금 잘 다니고 있는 직장이지만 내일부터 그 직장을 나갈 수 없다고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공무원 같은 직업에 매달리는 것도 아버지들의 그런 불안한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고용불안을 묻는 설문을 보면 설문 문항을 어떻게 짜던 간에 기본으로 직장인의 상당수가 고용 불안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6년 12월에 정규직 직장인 1,065명을 대상으로 한 고용불안감 현황 조사를 보면, 자그마치 80.2%가 현재의 고용상태에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을 했다. 특히 40대 이상의 경우 불안감을 느낀다는 답변이 89.3%에 이르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6년 한 통계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 통계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79.4%가 일자리를 잃거나 실업 후에 일자리를 다시 얻지 못하는 것을 불안해 하고 있다. 스웨덴이 24%, 미국이 40%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용에 대한 불안 수준은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서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근래에는 4차산업혁명이다 인공지능이다 뭐다 해서 고용에 대한 불안이 더 커지고 있다. 사람과 경쟁하는 것도 모자라 CPU와도 경쟁해야 할 판이니 고용에 대해, 정확하게는 '피고용 상태의 유지'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은 넓고 일할 사람은 많다
이 불안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걱정이 아니다. 실제 통계를 보아도 그렇다. 핵심 중산층이라고 얘기하는 전문직, 경영관리직과 기술직의 경우 2001년 당시 30대였던 남성들이 2011년에 기존 수준의 직장을 유지하는 비율은 65.13%라는 통계 조사 결과가 있다. 이 정도면 유지 비율이 꽤나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통계 조사는 그나마 괜찮다고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대상이다. 썩 괜찮은 직업을 가져 중산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 정도인데 그 보다 수가 더 많은, 중소기업이나 소기업에 다니거나 비전문적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상황이 더 나을 리는 만무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보일지도 모르지만 40대 아버지들 눈에는 ‘밀려남’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더구나 그 속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안의 그늘에서 빠져 나오기 쉽지 않다.
은퇴를 하고서도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상황은 만만하지 않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지금의 40대는 시쳇말로 ‘머릿수’가 너무 많다. 지금 40대들의 출생아 수는 매년 80만~100만 정도였다. 요즘 초등학교 한 반의 학생 수는 30명이 채 안된다고 한다. 40대에게는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40대의 딱 중간인 나만 해도 고등학교 시절까지 한 반의 학생 수가 60~70명씩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1학년 늦봄, 지방 소도시에서 수도권 대도시로 전학을 왔을 때, 내 번호는 자그마치 69번이었다. 나중에 전학을 온 72번 친구와 친하게 지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용에서 밀려나면 원래 하던 일보다 낮은 수준의 일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나이가 많다고 밀려난 마당에, 비슷한 수준의 다른 곳에서 쉽게 받아줄 리 없다. 하지만 40대의 경우는 머릿수가 워낙 많다 보니 낮은 수준의 일자리를 두고서도 경쟁이 너무 세다. “안되면 아파트 경비원이라도 해야지 뭐.”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경비원 자리라고 남아도는 게 아니다. (인구도 국가 경쟁력이라며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는 시국에 한 떄 그 '경쟁력'의 주체들이었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의 경쟁으로 허덕거리는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이런 상황에서 10년 남짓한 시간 안에 은퇴가 거의 정해져 있다시피한 40대 아버지들의 불안은 당연한 감정이다. 어쩌면, 정해진 은퇴라는 '재난에 가까운' 현실 앞에서 불안이 아닌 공포를 느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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