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맛
직장에서 하는 대부분의 일은 재미가 없다.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필요해서 하기 때문이다. 어디 일 뿐인가. 공부든 운동이든 연애든 결혼생활이든 회식이든 소개팅이든 헌팅이든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하면 뭐든지 재미 없는 법이다. 다행히 필요 때문에 하는 일이라도 일을 끝냈을 때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일의 결과까지 좋으면 짜릿한 성취감에 기분이 썩 좋아진다. 이런 맛이라도 없다면 직장생활은 글자 그대로 노동의 나날일 뿐이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맞다.
성취감이야말로 퍽퍽한 직장생활에서 한줄기 빛이다. 프로젝트를 잘 끝내고 고생한 동료들과 함께 들이키는 소맥 한 잔의 청량감은 필설로 표현 못한다. 이 맛에 직장생활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필요에 의해서, 책임의 부담을 잔뜩 짊어져야 하는 직장생활에서 성취감처럼 순수한 기쁨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성취감에 중독되기도 한다. 그 메커니즘(테크트리?)은 이렇다.
성취의 기쁨
성취의 기쁨은 일의 동기가 된다. 하지만 성취를 거듭할수록 기쁨의 효용은 줄어든다. 예전과 같은 수준의 일을 성취해서는 같은 크기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더 큰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성취의 크기를 키우거나 횟수를 늘리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성취에 집착해 일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덧 성취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의 기쁨이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불안한 상태'가 된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처음에는 쾌감을 위해 자기 팔에 주사를 놓다가 나중에는 약기운이 떨어졌을 때 엄습하는 고통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 더 자주 자신의 팔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중독이다.
또, 성취를 너무 탐하다 보면 모든 일에서 본인 스스로, 또는 주변에서 성공과 성취가 당연한 사람으로 낙인 찍을 수 있다. 여기서 '낙인'이라는 부정적인 표현을 쓴 것은 이유가 있다. 지속적인 성공 덕에 몇 차례의 실패만으로 무능한 사람으로 간주될 위험을 안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라면 승자의 저주다. 이 위험을 막자고 세 번에 한 번, 다섯 번에 한 번씩 '전략적 실패'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본인이 성취에 매달리고 주변에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이 이어지면 성공이나 성취에 대한 강박이 생긴다. 그리고 불안에 이끌려 일중독에 빠진다.
일중독의 원인
성취욕이 강한 사람이 일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일중독(Workaholic)이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성취욕이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일중독자라고 할 수는 없다. 일의 성취에서 오는 기쁨 그 자체를 동기로 삼고 일의 성취를 명확한 목표로 삼는다면 일중독자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일중독의 바탕에는 '불안'의 감정이 깔려 있다. 미약한 경제력에 대한 불안, 일의 성공과 성취에 대한 불안,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 평가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면 일중독이다.
일중독자에게 '일을 한다'라는 행위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다. 적어도 일을 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덜 불안한 것이다. 하지만 일에서 손을 떼면 다시 불안해진다. 일을 어느정도 성취했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성공, 성취, 평가, 자신에 대한 믿음, 경제력 등이 주는 불안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완전히 해소할 수 없는 일과 관련된 불안을 일순간이나마 떨치기 위해 일에 매달리는 악순환이 바로 일중독이다.
욕망 vs 불안
이에 반해 성취욕은 일의 성공과 성취에서 오는 기쁨을 원하는 욕망이다. 성취욕을 동기로 일을 할 때는 정한 시간 내에,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완성도 있게 일을 마친다는 명확한 목표가 생기기 마련이다. 불안한 감정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불안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아닌 것이다. 빗대어 얘기하면, 시험을 앞 두고 원하는 성적을 얻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성취욕이고 시험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 일중독이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 일을 하는 데 있어 어떤 동기가 작용하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한번쯤 갖자. 그 동기가 반드시 성취욕일 필요는 없다. 금전이나 명예, 명성, 관계, 업적에 대한 욕구여도 상관은 없다. 다만 불안 때문에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일은 중요하다. 눈 뜨고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불안한 채로 지낸다면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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