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칭찬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칭찬할 만한 좋은 것을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고 나의 칭찬에 어떤 사람이 기분 좋아 한다면 나의 기분도 좋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칭찬은 가끔 오해를 산다.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칭찬했을 뿐인데 '아부한다', '아첨한다', '알랑방귀를 낀다'는 소리를 듣는 일이 있다. 특히 직장에서 상사를 향해 호의가 충만한 칭찬을 하다보면 그런 오해를 사기 쉽다. 직장생활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아부(아첨)와 칭찬의 구분이 절실하다.
일단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아부인지 칭찬인지 구분부터 해보자. 이것은 쉽다. 칭찬하는 본인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얻는게 있어서 칭찬을 한다면 아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나 돈으로 살 수 잇는 것에서 이득을 보려고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아첨꾼이라고 했다. 어떤 이의 행위나 태도와는 관계 없이 단지 그 사람을 기분 좋게 해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얻으려 한다면 아부라는 얘기다. 꼭 재화나 손에 잡히는 무엇을 얻을 수 있어야 아부, 아첨이 아니다. 직장생활을 놓고 보면 승진이나 인사평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을 위해서도 상사에게 아부하고 아첨한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부인지 칭찬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칭찬의 말을 하는 사람 마음 속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뭔가를 노리고 하는 말인지 마음에서 우러난 말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스피노자는 그의 책 <에티카>에서 칭찬을 '우리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 다른 사람의 행위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정의한다. 스피노자의 정의에 따르면 누군가(의 행위)를 칭찬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한 행위) 때문에 느낀 기쁨의 표현인 것이다.
고객을 상대로 프리젠테이션 마치고 나온 김부장을 이과장이 칭찬하고 있다고 해보자. 고객의 반응도 좋고, 말도 조리있게 잘 했으며, 프리젠테이션 자료도 잘 만들고 그랬다면 보고 있는 나 역시 기쁜 마음이 든다.(김부장에 대한 편견이나 증오가 없다면 말이다.) 그러면 칭찬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감흥이 들지 않는데도 누군가가(이과장이) 칭찬 일색으로 호들갑을 떤다면 그건 그냥 김부장을 기분 좋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칭찬이 아니라 아부다.
또 하나 구분 방법은 칭찬은 구체적이고 아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누군가의 태도나 행위를 칭찬할 때는 딱 눈에 들어오는게 있다. 반면에 아부는 그런게 필요 없다. 그냥 사람 기분만 좋아지면 되니까 구체적일 필요가 없다. 칭찬할 만한 프리젠테이션이라면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명확하게 있다는 뜻이다. 아부는 그런 상세함이 필요 없다. "오늘 발표 너무 좋았어요!" 이 한마디면 된다. 이과장이 한 칭찬에 영 공감이 안가면 뭐가 좋았는지 슬쩍 물어보면 된다. "뭐, 전반적으로..."처럼 구체적이지 않은 대답이 나오면 칭찬보다는 아부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칭찬은 내가 기뻐서 하고 아부는 남 기쁘라고 한다. 좀 어렵게 얘기하면 칭찬은 대상을 목적으로 삼고 아부와 아첨은 대상을 수단으로 삼는다. 칭찬은 무엇을 바라고 하지 않지만 아부는 그렇지 않다. "내가 너 칭찬해줘서 기분 좋지? 그러면 나한테 잘해줘."가 아부의 속뜻이다. 뭔가 원하는 것을 위해 칭찬의 대상을 수단으로 삼는 셈이다. 앞에서 말한 방법이 아부와 칭찬을 구분하는 확실한 방법은 아닐 수 있다. 열 길 물 속보다 더 모르는게 한 길 사람 속이니까. 그래도 구분하려 애써야 한다. 선량한 사람을 아부꾼, 아첨꾼으로 만들어서는 안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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