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포장이란 이렇다. 어떤 감정이 일어 그것을 밖으로 들어내야 할 때, 원래 일어난 감정보다 크게 부풀리거나 작게 쭈그러뜨리는 것, 또는 원래 가진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렇게 감정을 포장해야 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 직장에서 상사의 별로 웃기지 않는 농담에 함박 웃음을 짓고, 영업하는 사람이 고객의 반응에 150% 반응하고, 선배의 위엄이 같잖아도 두려운 듯 굴고, 부모님의 잔소리를 새겨 듣는 척 비장한 표정을 짓는 것이 다 감정의 포장이다.
언제 포장하나
이런 감정의 포장은 대부분 내가 누군가의 아래에 있을 때, 상대가 나보다 강할 때 하게 된다. 하지만 단순히 지위의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나보다 지위가 높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작은 부분에서나마 권력을 가지고 있고 그 권력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의 포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아마 아랫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속에 없는 말을 하거나 과장된 반응, 또는 축소된 반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결국 그 기반이 지위이든 권력이든 간에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일은 드물다. 관계를 아예 청산하거나 계급장 떼고 한판 붙겠다는 심사가 아니라면(그 또한 관계의 청산을 동반한다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앞에 두고 감정을 포장하는 일은 늘상 있는 일인 셈이다.
꼭 해야하나
감정의 포장은 인격과 인격의 1대1 관계에서만 보자면 자괴감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수 많은 형태와 가짓수의 관계에 얽혀있는 세상살이를 위해서 적절한 감정의 포장이 필요한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적당히 감정을 포장하는 것은 이해 관계에 있어 윤활유가 되고 그것이 삶을 이어가는 수단들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오죽하면 쇼펜하우어가 이런 얘기까지 했을까.
분노나 미움을 말이나 표정으로 나타내는 것은 무익하다. 위험하다. 어리석다. 웃음을 금치 못할 일이다. 저급하다. 따라서 분노나 미움도 행위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결코 나타내서는 안된다.
- 쇼펜하우어 인생론 中
안할 수는 없나
물론 감정의 포장을 피하는 방법이 아주 없진 않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위나 권력에 있어서 '절대강자(끝판왕)'가 되거나, 혹은 나보다 강한 사람과는 아예 상종을 말거나, 어느 누구와도 이해로 얽힌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내가 아쉬울 것이 없는데 굳이 감정을 포장할 일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해관계로 점철된 세상에 던져진 이상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차라리 감정의 포장이 일상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보는게 맞다. 사람과의 관계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감정의 포장이라는 것이 특정 부류의 사람에게나 있는 독특한 행위라고 생각할 리는 없다. 아랫사람의 한껏 오버한 반응을 윗사람이 곧이 곧대로 믿는다 생각하는가?
가볍게 생각하자
그러니 너무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괴감에 빠지진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고, 나 역시 그렇다는 것을 남들도 알고 있다면 굳이 감정의 포장을 걷어내 겸연쩍은 분위기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저 사람을 대할 때 분위기 고취에 쓰임이 좋은 약간의 추임새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세상 속에 투신해서 이해 관계를 통해 뭔가를 얻고 있다면 - 감정의 포장은 그것을 위한 약간의 투자 정도로 생각하자.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게 정신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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