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이 어느정도 차고 경력이 붙으면 시야가 깊어지고 넓어진다. 일이 흘러가는 모양새나 사람들의 태도 따위를 읽는 나름의 통찰력이 커질 뿐만 아니라 그 범위도 확장된다. 그리고 그 정도가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관리자나 준관리자 정도의 자리에 가게 된다. 이렇게 실무 위주로 업무를 보다가 관리자 역할을 맡게되면 마치 개안을 한 것처럼 시야가 훤해진다. 교단에 섰을 때 교실 전체가, 학생들 하나 하나가 잘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다보니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도 눈에 잘 들어온다. 일을 집중해서 하고 있는지, 딴 짓을 하고 있는지, 업무 이외의 생각에 빠진 것인지 대략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속이 답답해지는 일이 생긴다. 직원들의 업무처리가 마음 같지 않을 때도 많고 업무를 수행하는 태도나 방법이 마음에 안들 때도 있다. 특히 (관리자 본인이 생각했을 때)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직원을 보면 속이 턱 막힌다. '저럴 거면 왜 회사에 나와 있나?'라는 생각이 들고 때로는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직원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직원에 대해서는 훈계를 하거나 태도를 고치도록 지시를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조치를 하기 전에, 쉽게 말해 직원을 '깨기' 전에 왜 일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직원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조치를 하는 방법도 엄연히 달라야 한다.
다른 업무의 방해
업무 지시를 했는데 완료 처리가 늦는다. 퇴근 전까지 완료하려 했는데 결국 야근을 해야겠다고 한다. 근무 시간 내내 뭘 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야근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업무 지시가 무시당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게으르고 무능력한 직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직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업무를 안하고 노는 것은 눈에 너무 잘 보이기 마련이다. 사실 업무를 보다보면 한가지 일만 하는 경우가 드물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더 급한 일이 밀고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급한 쪽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대개 처리 시간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도 몰라주고 그저 지시한대로 못했다고 깨면 야근이라도 하려 했던, 혹은 야근도 불사했던 실무자는 힘이 쭉 빠진다.
업무를 처리하는 실무자 입장에서는 적당한 보호를 원한다. 어떤 일을 지시했으면 그 일 이외에 것에 집중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윗선에서 미리 보호를 해줘야 한다. 그런 것도 없이, 업무 처리 중에 어떤 다른 일이 있었는지 고려도 않고 다짜고짜 질책하는 것은 실무자의 의욕을 바닥내버릴 뿐이다.
개인적인 사정
어떤 직원이 평소답지 않게 업무처리가 시원찮을 때가 있다. 뭔가 딴 생각을 하는 것 같고 업무에 집중도 하지 않는 것이 보인다. 보통 이런 경우는 태도를 문제 삼는다. 직원은 회사에 일을 하러 왔으니 일을 하는 것이 맞다. 그렇게 하겠다고 근로계약서도 썼으니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따라서 그러한 태도에 대한 질책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쓴다고 사람이 로봇이 되진 않는다. 우리는 직장에서 이성을 총동원해 일을 하지만 감정을 집에 두고 출근하진 않는다. 때로는 감정의 문제가 있어 일에 집중을 못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감정이 이성보다 더 솟구친 상황에서 평소처럼 일하기는 힘들다. 아무리 눈만 뜨면 가는 회사고 하루의 눈 뜬 시간 중 대부분을 마주하는 직장 동료라고 해서 내 감정 상태까지 일일이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무조건 태도를 질책할 것이 아니라 그 감정에 무슨 일이 있는지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벅찬 업무
사람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정도의 역량과 시간을 들여서 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되면 그것을 다른 이에게도 적용한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다고 다른 사람이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관리자 정도 되면 실무에는 이골이 난 수준인데, 그 수준을 일반 직원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일반 직원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관리자와 일반 직원이 차이가 없다는 얘기 밖에 안된다.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했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 기준이다. 업무 지시를 받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그 사람의 불성실함, 능력부족으로 몰고 가는 것은 짧은 생각이다. 혹시 그 직원에게는 벅찬 업무가 아니었나 생각도 해야 하며 그런 점을 고려해서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냥 일하기 싫음
예외가 있다면 정말 '일하기는 싫은데 월급은 받고 싶은' 경우다. 이 경우는 오히려 질책이나 훈계가 불필요하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내보내면 그만이다.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그 이유를 밝혀서 일을 제대로 하게끔 하면 되지만 그냥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답이 없다. 이 때도 질책이나 훈계로 뭘 어떻게 해보려고 애쓰는 경우가 있는데 부질 없는 일이다. 사실 직장이라는 곳이 질책이나 훈계 덕분에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일은 잘 없다. 질책이나 훈계 덕분에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냥 마지못해 할 뿐이다.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직원이 있다면 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지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판단해야 한다. 업무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처리하기에 벅찰 수도 있으며 업무를 정상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감정상태일 수도 있다. 단지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표면적인 상황만 두고 질책이나 훈계를 하는 것을 상처를 줄 뿐이다. 그래서는 그저 직원들 부려먹으려고 애쓰는, 노는 꼴 못보는 비호감 관리자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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