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몸담았던 회사의 사장이 회계 담당자와 비용지출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내가 내 돈 쓴다는데 왜 그렇게 제약이 많으냐'면서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내 삶의 터전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가진 사상이 너무 옹졸하고 몰상식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회사란 곳은 이런 저런 지출을 하고 싶어도 업무 차원에서 사용했다는 증명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은 웬만한 직장인이면 다 안다. 심지어 회사의 재화를 함부로 유용할 수 없는 것은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회사의 돈은 사장 돈인데 왜 그 돈을 사장이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회사의 돈은 회사의 돈이지 사장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이런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 한 회사의 대표이사가 그런 것을 모를 리는 없다 - 짜증을 내는 모습에서 '이 회사는 내꺼임'이라는 사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이 회사는 내가 만들었으니 내 것이고, 이 안에서 벌어들이는 이익도 모두 내 것이라는 '제왕적' 리더십을 가진 사장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런 리더십의 사장들은 회사와 자신을 구분짓지 않으려 한다. 한마디로 '짐이 곧 회사'라는 얘기다. 특히 전문 경영자를 두지 않는 대부분의 중소기업의 최고임원은 '대표이사=사장=CEO'이라는 구조 안에서 제왕적으로 군림하기 일쑤다.
법인카드로 장을 보자
엄연히 법에서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쓰는 경우는 다반사다. 마트에서 쌀과 반찬거리를 사고' 식구들과 외식을 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해외여행을 간다. (물론 마트에서 주는 회원 적립금과, 식당에서 받은 쿠폰과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서 쌓이는 포인트는 개인 소유다) 그렇게 하고 나서 회계 담당자에게 던져주는 영수증의 처리는 두번째 문제다. 그들은 '내 회사'이기 때문에 '회사의 돈도 내 돈'이라는 유치한 발상으로 회사의 돈을 쓴다. 회사의 이익에 가장 민감해야 할 사람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황당한 광경이다.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만약 일개 직원이 법인카드로 식구들과 외식을 하고 해외여행을 위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노발대발 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감히 '내 돈'을 함부로 개인의 포만감을 충족시키는 것에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사위원회를 연다, 회사의 기강이 무너졌다, 콩밥을 먹여야 한다, 팀장들 다 모여라 하면서 자신의 돈에 손을 댄 것을 후회하게 만들 것임이 분명하다.
직원을 수족처럼
또, 제왕적 리더십의 사장들은 직원을 수족 부리듯이 하기 일쑤다. 자신의 가족 대소사에 직원을 불러 부려먹고, 자신이나 가족의 안락함을 위해 운전을 하도록 하고, 심지어는 휴일에도 불러서 사적인 용무를 처리하게 한다. 그들은 '회사=나=왕'이기 때문에 회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소유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지시가 회사의 지시이니 그것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직원들을 대한다.
직원은 사장의 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근로계약서와 연봉계약서를 쓸 때 알 수 있다. 각자의 서명란을 보라. '자연인' 아무개와 아무개가 서명하지 않는다. 직원으로서의 아무개와 회사 대표로서의 아무개가 서명을 한다. 회사 대표는 자연인이 아니다. 회사를 대표하는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일 뿐, 엄밀히 말해서 직원은 회사와 계약을 한다. 따라서 직원은 회사를 위한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사장의 집안 일은 회사의 일과 당연히 구분되어야 하며 그런 구분은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아는 것이다.
제왕적 리더십의 위험
이러한 제왕적 리더십의 가장 큰 위험성은 '불평등의 용인'과 '복종의 강요'다. 사장과 직원은 각자 회사에서 맡은 임무의 종류와 책임의 크기가 다른 '사람'일 뿐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봤을 때는 평등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제왕적 리더십의 사장들에게는 사장 밑으로는 다 똑같다. 사장이 왕이면 직원은 신하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착각이다. 사장이 왕이면 직원은 노예일 뿐이다. 왕과 노예는 평등할래야 평등할 수 없다.
이런 봉건적인 불평등을 용인하는 회사의 분위기는 처절하기 짝이 없다. 사장 눈에 잘못 들면 그냥 목이 달아난다. 왕이 노예를 내치는데 있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논리적, 이성적 판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기 감정이 안좋으면 내친다. 그러니 복종으로 삶을 구걸하는 비참한 광경이 일반화된다. '죽을만큼 출근하기 싫은 회사'를 가만히 보면 이런 분위기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나를 노예로 삼는 곳에 소중한 삶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존경받지 못할 자
보통 이렇게 구는 사장님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공과 사를 구분하라'다. 쓴웃음을 짓게 만드는 소리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회사는 자신의 것이니 자신과 회사는 구분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따라서 그런 '공사의 구분'은 직원들이나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이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은 사장님을 존경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것이 보편적 양심에 들어맞기 때문일 뿐이다.
사장들을 보면 존경받고 싶어 한다. 직원에게 존경 받고 싶어하고 밖에 나가서도 존경 받고 싶어한다. 제왕적 리더십을 가진 사장들도 그런 욕망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노예의 왕이 되어서는 존경받기 힘들다. 노예는 왕을 존경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밥을 주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며 대부분은 언제 휘두를지 모르는 채찍과 몽둥이가 무서워서 따를 뿐이다. 그러니 "회사=나"라는 제왕적 리더십을 가졌다면 존경은 포기하는 것이 낫다. 그나마 회사에서는 반란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다행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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