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살기 바쁜 40대
모든 연령층은 저마다의 현실을 짊어진다. 10대는 학업을, 20대는 사회 진출을, 30대는 삶의 안착과 발전을, 50대는 생활의 안정과 노후준비를, 60대는 남은 삶의 안위를 짊어진다. 서로 모양새는 다르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방향성을 갖는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40대 남자의 현실은 미래에 대한 방향성이 약하다. 가족을 부양하고, 가정을 유지하고, 직업을 지속해 현실을 유지하는 쪽으로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
자녀들은 아직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정도로 자라지 않아 앞으로 몇 년 간은 부모의 손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아이들이 자랄수록 돈은 더 많이 들어간다!) 가정의 유지를 위해서도 많은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치르기 위해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어야 하며, 그 수입을 위해서는 일을 멈추면 안된다. 삶의 수단을 마련하는 길이 직장생활이든, 장사든, 사업이든 매일 매일이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이렇게나 버거운 현실을 헤쳐나간다 해도 밝은 미래는커녕 당장의 안정성조차 쉽게 보장되지 않는다. 만만해 보였던 자영업은 2~3년을 넘기기가 힘들고 원대한 포부로 시작한 사업은 앞날을 기약하기가 쉽지 않다. 따박따박 월급 타먹(는다고 하)는 직장생활도 별다르지 않다. 외환위기 때 등장했던 '사오정(45세 정년)'의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평생 직장' 개념은 아버지 세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설의 레전드 단어가 되었다. 40대 남자들 앞에 놓여 있는 이런 현실은 미래를 걱정할 틈마저 앗아가버린다. 40대는 분명 늙음이 시작되는, 늙음을 준비해야 할 나이지만 대부분의 40대 남자에게는 자신의 늙음을 준비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40대 남자는 바쁘다. 혼자 살든, 가족과 함께든 상관 없다. 삶의 유지를 위해서는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노동으로만 벌어들일 수 있다. 게다가 노년기에 접어들면 중년기처럼 일할 수 없는, 지금만큼 돈을 벌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바로 지금' 지독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한다. 다행히도, 10년이 넘도록 일한 터라 익숙함과 능숙함이 후배 세대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40대 남자는 사회적으로 공식 인정된 '한창 일할' 사람들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이라면 복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에만 몰두하다 보면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는 소홀하게 된다. 많은 40대 남자들은 신체 능력을 30대에 고정시켜 놓기 일쑤다. 쓸 일이 없어서 그렇지 여전히 30대에 맞먹는 체력과 신체 능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오랜만에 한 운동에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안뛰다가 갑자기 뛰어서 그런거라고 자신을 합리화하고 위로한다. 처지는 가슴살과 솟아오른 배를 나잇살로 얼버무리고,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을 피로 탓으로 돌려 버린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주저앉는다.
40대 남성의 사망률
2017년, 40대 남성은 암으로 가장 많이 죽어가는 세대이며 지난 5년 동안 자살률이 두 배로 뛴 세대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5년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첫 번째는 자살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10대, 20대, 30대는 아직 '신체적 결함' 때문에 죽을 나이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평균 수명을 대입해 보아도 아직은 신체적으로 괜찮은 축에 속해야 하는 40대의 첫 번째 사망원인은 암이다. 10~30대의 첫 번째 사망원인이 자살이었다가 40대부터는 사망원인이 암으로 순위 바꿈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서글픈 우스개 소리도 있다.
"자살하고 싶어도 참고 살았더니 암이 오더라."
그렇게나 참았던 자살도 40대에서는 평균을 넘어선다. 위의 통계조사에 따르면 남녀를 통틀어 인구 10만 명 기준 자살자의 수는 26.5명인데, 남성은 37.5명이다. 10대~30대 남성의 경우 연령대 별 자살자의 수는 각각 (10만 명당) 4.6명, 20.3명, 32명으로 남성 전체의 자살률인 37.5명 아래다. 하지만 40대 남성은 42.1명으로 평균을 추월한다. 이는 40대 여성의 자살률 17.3명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남녀의 자살률 차이에 그렇게 놀랄 필요까지는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0세를 단위로 한 모든 연령층에서 여성보다 남성의 자살률이 높으니 말이다. (여성의 자살률은 15.5명) 심지어 50대를 넘어가면 남녀의 자살률 차이가 세 배를 넘어간다.
40대 남성의 사망률을 보면 (글을 쓰는 나 역시 40대 중년 남성의 한 명으로서) 우울하기까지 하다. 10~30대 남성의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19.3명, 50.8명, 86.6명이다. 그러다가 40대가 되면 221.4명으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40대 여성의 사망률이 99.2명인 것에 비하면 대단히 큰 수치다. 그 후로 50대, 60대가 되면 사망률이 500, 1000 단위로 늘어난다. 우리나라 남성은 40대에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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