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에서는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 그것이 미덕이고 규칙이다. 감정을 통제한다는 것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감정을 왜곡해서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감정의 포장'이라고 한다. 감정의 포장은 원래 느낀 감정보다 크게 부풀리거나 작게 쭈그러뜨려 표현하는 행위, 또는 원래 가진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표현하거나 느끼지도 않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감정을 포장해야 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상사의 별로 웃기지 않는 농담에 함박 웃음을 짓거나 박장대소를 하고, 고객의 말 한마디에 감탄사를 터뜨리며 과장해서 반응하고, 선배 직원이 같잖게 보여도 두려운 듯 굴고, 상사의 잔소리를 새겨 듣는 척 비장한 표정을 짓는 것이 모두 감정의 포장이다. 직장생활에서 감정의 포장은 일상이나 다름없다.
감정을 포장하는 행위가 아예 업무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고 부른다. 감정노동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사회학 명예교수인 알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가 『The Managed Heart(관리된 마음)』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개념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거나 특정한 감정을 연출하는 행위 자체가 업무 수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일컫는다. 은행원, 항공승무원, 전화상담원, 판매원처럼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감정노동 종사자'이다.
혹실드 교수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특정한 감정을 연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의 감정을 관리하는 것까지 감정노동에 포함시킨다. 예를 들어 항공승무원의 경우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승객의 감정까지 제어해야 한다. 승무원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함이나 공포의 감정을 감추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야 할 뿐만 아니라 승객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최소화하거나 긍정적인 다른 감정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즉, 내 감정의 포장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특정한 감정까지 요구하는 것이 감정노동이다.
감정노동에 오래 종사한 노동자들은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은 일본 오사카 쇼인여자대학 마코토 나츠메 교수가 제안한 개념이다. 마코토 나츠메 교수는 부자연스러운 미소짓기를 계속하면 우울증이나 신체 질환이 유발된다고 주장한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을 때, 감정과 표정의 부조화가 생기고 그것이 지속되면 스트레스와 강박이 되어 정신과 신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특정한 감정을 연출하는 행동이 40%를 넘어가면 감정노동이라고 한다. 사실 정도와 대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일반적인 직장인이 직장생활에서 보여주는 많은 행동들이 감정노동과 비슷하다. 감정노동이 업무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다면 감정의 포장은 업무 뿐만 아니라 원만한 직장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차이다.
얼마 전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경비원을 하던 분이 입주민의 모욕적인 언사와 비인격적(비인간적)인 대우에 분신을 했고 결국은 세상을 등졌다. 그 분이 분신을 한 결정적 계기는 한 입주민의 도를 넘는 행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정적 계기일 뿐 분신의 모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돌아가신 그 분은 평소에도 입주민들을 대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지도 않는 감정을 표현하느라 애썼을 것이다. 또, 자신의 직무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잦았을 것이다.
감정은 외부의 자극에 대한 마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런 감정을 숨기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본성에도 어긋난다.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은 괴롭고 고통스럽다. 결국, 감정을 숨기고 거짓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다. 그 경비원 분께서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한 것은 직무의 수행을 위해 감수한 마음의 상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노동을 노동의 형태를 일컫는 말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있지도 않은 거짓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을 기만하는 일이며 자괴감을 일으킨다. '먹고 살기 위해서' 감정과 행위의 부조화를 감수할수록 영혼은 황폐해져 간다. 영혼을 긁어내 배를 채우는 것이 감정노동이다. 감정노동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는, 인간의 본성을 소외시키는 노동 형태다. 이 감정노동이 일상화 된다면 노동은 영혼을 팔아 배를 채우는 행위가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노동 위에 존재한다면 감정노동에 대한 해법은 지금 당장 고민해야만 한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꼭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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