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꼰대는 어딜 가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세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살면서 또 하나 피할 수 없는 것이 꼰대다. 세상은 넓고 꼰대는 많다. 대하고 있노라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꼰대들은 생활 곳곳에 포진해 있다. 조금이라도 위계질서가 서 있는 곳이라면 마치 '꼰대 총량 불변의 법칙'이 있다는 듯이 어김없이 꼰대가 도사리고 있다. 수직적 위계질서를 기본 질서로 삼고 있는 직장은 꼰대가 서식하기 더없이 좋은 곳이다.
꼰대의 행태 범주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강한 확신이다. 꼰대들은 확신에 가득 차서 되고 안되고와 옳고 그름을 일도양단해버린다. 딱히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확실한 근거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말이 좋아서 확신이지 사실은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꼰대는 남에게 설득당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오직 자신이 생각이 최선이고 최적이며 최고다. 더불어 그 강한 확신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꼰대의 기본 소양이다.
둘째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강조와 과장이다. 꼰대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왕년에 말이야...', '내가 예전에 일할 때는...'처럼 경험을 강조하는 말을 자주 쓴다. 한 인간이 경험을 해봤자 얼마나 하겠냐만, 꼰대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경험을 다 한 듯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의 이치를 다 통달했다는 듯이 오만하게 군다. 좋게 말해서 오만이지 잘난척에 가깝다.
셋째는 위계질서나 규범, 도덕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것들에 복종하길 바라고 나아가서 복종을 강요한다. 꼰대들이 '그냥 시키는 대로 해',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많아', '어디서 말대꾸야?' , '요즘 젊은 놈들은...' 같은 말을 자주 쓰며 업무나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복장이나 행동에 대해 지적질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세 가지 범주의 행태들이 모이면 꼰대가 완성된다. 업무회의한답시고 직원들 모아놓고서는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부하 직원의 견해는 묵살해버리고, 기껏해야 의견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뿐이며, 논리에 밀리면 '까라면 까는 거지 무슨 말이 많아? 그리고 넌 상사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를 시전하면 완벽한 꼰대 상사가 되는 것이다.
참 민망한 일이다. 이 민망한 일을 꼰대 상사들은 서슴없이 해댄다. 보고 있는 부하직원들 입장에서는 상사의 꼰대짓이 전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물론 꼰대짓을 하는 상사들도 부하직원 시절에 자신들의 상사를 보면서 그랬을 확률이 높긴 하다.) 저런 짓을 하다가는 비난과 뒷담화의 대상이 될 뿐임을 꼰대 상사 본인만 모르는 듯해서 답답하다. 그들도 반성과 성찰의 능력을 갖춘 인간일 텐데 왜 남부끄럽기 그지없는 꼰대짓을 할까?
이해가 되지 않고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이성의 범위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꼰대질이 과연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행동 양식일까? 그렇지 않다. 꼰대짓은 이성이나 합리와는 거리가 멀다. 꼰대짓의 이유는 앞에서 말한 꼰대짓의 세 가지 행태 범주를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 세 가지 행태 범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바로 우월감이다.
꼰대짓을 하는 이유
꼰대짓 하는 상사들이 자신의 견해를 밀어붙이고 부하직원의 의견을 과격하게 묵살하는 것은, 과연 상사들이 자신의 견해에 100%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경험이 더 많은 상사 자신들이 더 잘 안다. 100%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무리 단순한 일이라도 100% 예측 가능하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꼰대짓을 하는 상사들은 단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킴으로써 부하직원에 대해 우월감을 획득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경험에 대한 강조와 과장에도 자신의 우월함을 내보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만큼 자신의 능력을 포장하기 쉬운 것이 없다. 상사의 입장에서 부하직원들보다 확실하게 앞서는 것이 바로 경험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상사 자리까지 왔으니 경험만큼 자신의 능력을 잘 증명해주는 것도 없다. 상사들이 과거를 들먹이며 꼰대짓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부하직원들 앞에서 경험을 강조해 자신의 우월감을 획득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경험은 자신의 확신을 밀어붙일 때도 사용되는 아주 쓰임새가 좋은 아이템이다.
위계질서, 규범, 도덕을 앞세우는 것은 복종하라는 의미다. 복종은 열등의 상징이다. 반대로 누군가가 나에게 복종을 한다는 얘기는 내가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얘기다.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에서 "우세한 계급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도덕은 대부분 계급적 이익과 계급적 우월감에서 유래한다."라고 말했다. 상사들의 꼰대짓은 위계질서나 규범, 도덕의 정치적 속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우월감을 고취하려는 행동인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상사는 부하직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다. 개인의 판단이나 평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조직의) 공식적인 판단과 결정에 의해서 우월함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실제 직장생활에서는 "어떻게 이런 인간이 부장을 달았고 저런 또라이가 이사를 달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개인의 의견과는 별개로 상사라는 타이틀은 조직이 공식적으로 우월함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상사는 부하직원에 대해서 자신이 가진 지위와 권위만으로도 충분히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강요하기 위해 꼰대짓을 하는 이유는 뭘까?
오랜만에 주말을 아빠와 함께 보내는 아이가 아빠에게 자주 던지는 말은 "아빠, 오늘 회사 가?"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녁에 해가 지고서도 계속 물어본다. 아빠가 회사를 갈까 봐 불안해서다. 사랑받지 못해 상처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연인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거듭 확인하려 든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불안해서다. 상사들이 꼰대짓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고 강요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자신이 열등해 보일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우월하기 위해서는 부하직원은 열등해야 하며, 부하직원을 열등한 상태로 두기 위해 계속 꼰대짓을 하는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자신의 힘에 만족하는 사람은 일탈적인 행동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힘에 만족한다는 것은 자존감이 높다는 뜻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남을 깎아내려서 인정받거나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상사들이 꼰대짓을 하는 이유가 나온다. 결국 상사들의 꼰대짓은 부하직원의 자존감을 깎아내려서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보상하려는 행동일 뿐이다.
해결책은 딱히 없다. 꼰대짓 말고는 자존감을 높이고 우월감을 얻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자기반성과 성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하직원의 입장에서는 적당히 거리를 두거나 적당히 우월감을 키워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현실이다. 다만, 그런 꼰대 상사가 되지 않도록 마음공부는 미리 해두자. 타산지석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있는 꼰대들을 줄이기는 어렵지만 새로 생겨나는 꼰대를 줄이는 것은 꼰대짓에 손가락질을 하는 우리의 몫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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