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40대 남자

40대 남자의 슬픔 - 수저의 대물림 I

김성열 2018. 6. 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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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자의 슬픔 - 수저의 대물림


I. 자본이 자본을 낳는 세상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갖고 있다. 교육에 비용을 많이 투입할 수 있는 부모나 그렇지 않는 부모나 마찬가지다. 불안은 불확실에서 온다. 자녀가 얼마나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지,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 지 없을 지, 대기업 입사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을 합격할 공부머리가 될 지가 불확실한 것은 부유한 부모나 가난한 부모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과 관계 없이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부모들이 처음부터 자녀 교육에 불안해 하지는 않는다. 자녀가 갓난아이 때는 아프지 말고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충만하다. 하지만 자녀가 교육 체계 안으로 들어가는 나이가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냥 아프지 않는 몸 하나만으로는 살아갈만한 세상이 아니라는, 경험에서 우러난 판단 때문이다. 


판단의 근거는 충분하다. 우리 사회는 학벌에 따라 선택의 폭이 달라지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직업이나 배우자 같은 경우는 학벌에 따라 선택의 기준, 혹은 수준이 정해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거기에다가 안정과 풍요로움이 행복의 척도로 여겨지는 사회 풍조까지 더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연봉, 좋은 집, 큰 차 같은 물질적인 것들을 행복한 삶으로 환산해버린다. 그 물질적인 것들의 시작은 좋은 직업이고,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 해야 한다. 인생에서 공부(성적)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들은 한다. 하지만 물려줄 막대한 유산이 없는 이상, 공부를 잘 하는 것만큼 삶의 안정감과 풍요로움을 북돋우는 수단은 없다. 이것이 ‘좋은 성적 = 좋은 직업 = 행복한 삶’이라는 간편하고 명쾌한 논리가 나온 배경이다. 얼마나 우수하고 뛰어난 성적으로 교육 과정을 이수하였느냐가 삶과 미래를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의 견해에 따른다면 우리는 아주 속물적인 사회에 살고 있으며,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속물적인 성취와 성공을 위해서 교육에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에서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갔다고들 한다. 모두가 못살았던 시절에는 출발점들이 비슷했다. 개인 역량과 노력으로 개천에서 용도 나고 이무기도 나고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한 달에 사교육비로 100만원을 쓸 수 있는 집 아이와 5만원을 쓸 수 있는 집 아이를 동등한 경쟁 상태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녀의 미래를 위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교육 말고 딱히 투자할만한 곳이 없다. 포기하면 세상 편하겠지만, 적어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의 미래가 달려 있는 사안에 대해서 쉽게 포기가 안된다. 힘 닿는 데까지 밀어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들을 하기 마련이다. 이런 부모의 마음과 학벌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 환경이 결합되면서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역할은 단순해지고 극명해진다. 할 수 있는 만큼 자녀 교육에 비용을 쏟아 붓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자녀 교육은 부모의 관심과 투자한 비용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통설까지 합쳐져서 자녀 교육은 비용 경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이런 환경 덕분에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불안과 함께 부모로 하여금 다른 감정들을 갖게 만든다. 특히 교육 비용의 전담을 주된 역할로 하는 아버지들은 불안 이외의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아버지의 능력이 자녀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명제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불안 외에 다른 감정이 드는 것을 피하기가 어렵다. 물론 경제적 능력이 충만한 아버지들은 어느 정도 예외다. 지금 얘기하려는 것은 그저 평범한, 40대 아버지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잡코리아의 설문에서 자신이 흙수저에 가깝다고 응답한 40대는 67.6%에 이른다) ‘흙수저’ 아버지들의 감정이다.


아버지의 능력이 자식의 능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싶은 아버지는 대부분 금수저일 것이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모든 아버지가 같은 마음이고, 자신의 능력으로 자식이 잘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반면에 흙수저 아버지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실력과 능력이 대물림 된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믿고 싶지 않다고 해서 현재의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결국 아버지의 능력,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버지의 경제적 능력이 자녀 교육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을 모두가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심이 되는 자본은 경제자본이다. 경제자본은 쉽게 말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다. 현금, 유가증권, 땅, 건물 같은 금전 자본, 실물 자본이 곧 경제 자본이다. 기본적으로 경제자본을 많이 보유한 사람은 윤택하고 풍요로운 삶이 살 수 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다른 형태의 자본들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역할까지 한다. 경제자본으로 일굴 수 있는 자본은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경제자본 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 세 가지 형태의 자본, 즉 문화자본과 학력자본, 사회관계자본이다. 


문화자본은 미적 감각, 예술에 대한 정보와 지식, 문화적 취향 같은 것을 의미한다. 학력자본은 학위나 학벌을 말하며, 사회관계자본은 인적 관계, 쉽게 말해 인맥을 말한다. 부르디외는 경제자본만으로는 계층 상승이 어렵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계층 상승을 위해서는 나머지 세 가지 자본까지 획득해야 하는데, 경제자본을 보유한다고 해서 나머지 세 가지 자본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월급쟁이로 살다가 부모님이 물려준 조그마한 땅에 신도시가 들어서는 바람에 갑부가 된 사람은 경제자본은 갖추었지만 나머지 세 가지 자본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상류 계층으로 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부르디외가 지적한 바와 양상이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상류 계층을 정의하는 가장 큰 기준은 경제자본이다. 수십억짜리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서너 대 굴리고, 상가 건물에서 들어오는 월세로 살아가는 사람이면 상류층이라고 한다. 그 사람이 얼마나 교양이 있는지, 미적 감각과 취향은 어떤지, 유명 인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2018년 봄을 뜨겁게 달궜던 한진그룹 일가의 갑질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기업을 보유한 일가랍시고, 임원이랍시고, 회장 부인이랍시고 아랫사람들 막 대하면서 있는 갑질 없는 갑질을 해댔다. 그러면 상류층의 오만함과 도덕성의 부재가 문제라는 기사와 컬럼들이 줄을 잇는다. 이미 사회가 그들을 상류층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상류층으로 규정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사업 크게 하고, 돈 많이 벌고, 남을 부릴 수 있는 높은 지위에 있기 때문에 상류층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교양이나 매너, 미적 감각 같은 것들이 상류층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 아마 알랭 드 보통은 그들을 속물의 전형이라고 할 것이고, 부르디외는 (만약 그가 살아 있다면) 그들을 상류층이라고 정의하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줄세우기 식의 교육 시스템 덕분에 경제자본의 대물림이 쉽다. 부모가 경제자본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자녀 교육에 돈을 쏟아 부어서 국내외의 좋은 대학에 보내서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만들면 그들의 자녀는 경제자본을 확보한 계층이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소득계층 상위 50%인 아버지의 경우 자녀의 학력이 1년 증가하면 부(富)의 대물림 확률이 5.7~7% 증가 한다고 한다. 교육이 부의 대물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만일 자녀가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거나 공부에 소질이 없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모의 경제자본을 직접 자녀에게 물려주면 그만이다.


우리는 이처럼 경제자본이 문화자본과 학력자본을 만들어낼 수 있거나, 경제자본이 다른 형태의 자본들을 대체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다 보니 경제자본, 즉 돈이 많으면 상류층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삶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의 가치들을 돈과 연결 지어서 생각한다. 좋은 직장은 돈을 많이 주거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혜택을 많이 제공하는 직장이다. 좋은 학교는 직장을 구하거나 직업을 선택할 때 경쟁력을 배가해주는 학교이며, 좋은 성적은 그러한 학교를 갈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다. 그리고 좋은 부모는 경제력이 있는 부모다. 출발선이 그만큼 뒤처져 있고, 앞선 이들을 따라잡기는 더욱 요원한 상황에 있는, 그리고 그 삶의 지난함과 열등감을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흙수저 40대 남자들의 마음은 잦아들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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