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체'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08.19 체리피커와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체리피커(cherry picker)

'체리피커(cherry picker)'라는 말이 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누리는 소비자를 뜻한다. 원래 이 말은 신용카드 분야에서 나왔다고 한다. 신용카드는 사용하지 않으면서 부가서비스 혜택만 누리는 고객을 이렇게 부른다. 편하게 얘기하면 (듣는 체리피커는 불편하겠지만) 자기 실속에만 관심이 있어서 상대의 처지나 상황은 나몰라라 하는 사람이다. 우리말로 하면 '깍쟁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체리피커나 그런 (깍쟁이) 성향의 사람이 꼭 시장에만 있지는 않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도 체리피커가 있다. 관계 안에서 자기가 누릴 편함이나 실속에만 관심이 있고 불편이나 손해는 감수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체리피커다. (가수 김현정이 불렀던 '멍'이라는 노래에 딱 맞는 가사가 있다. '다만 니 뜻대로 모두 맞춰줄 너 하나 밖에 모르는 내가 필요했을 뿐.') 관계라고 해서 개인과 개인으로 한정짓지 않아도 된다. 다수의 개인들이 얽인 집단도 엄연한 관계의 산물이다. 집단 안에서도 자신의 편함과 실속이 행동과 태도의 기준이 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사실 체리피커들을 대놓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관계에서의 체리피커들은 자신의 손해나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대신 남에게 그런 것들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체리피커의 태도를 당연하다 여기는 마음이 들기도 어렵다. 이성적으로야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감정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타협이 필요하다. 타협은 각자에게 가장 좋음(최선)을 포기하는 데서 성사가 되는데 체리피커들은 자신의 최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깍쟁이 같은 심보에 심정적으로 동의를 하기가 영 껄끄러운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체리피커

특히 집단에서는 더 그렇다. 1대 1의 관계에서 상대가 나에게 편함이나 이익만을 얻으려 하고 자신은 약간의 불편함과 손해도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고 하자. 특별한 계약이나 약속이 깔려있지 않은 이상 그런 관계는 유지가 어렵다. 상대가 나를 '뜯어먹는다'거나 '호구'로 여긴다는 생각은 관계를 끊기 위한 구실로 제격이다. 아마 사랑에 눈이 멀어서 감정이 이성을 완전히 짓누르는 상황 정도가 예외일 것이다. (이때는 자신이 '호구 잡힌' 줄 알면서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못해줘서 안달이다. 오, 사랑의 힘이여!)


집단은 다르다. 체리피커가 감수하지 않은 손해나 불편을 (집단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나머지 사람이 나눠야 한다. 동료직원의 갑작스런 결근으로 업무공백이 생겼고, 그 공백을 메우느라 온 팀원들이 야근을 불사하며 일해야 하는 판국에 자기 일 끝났다고 칼퇴근 하는 직원이 있다고 하자. 그 직원을 이성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자신이 일이 끝나서 집에 간다는데 뭐라 말할텐가. 관계에서 희생적인 태도나 행동은 공감과 이해를 전제로 한 자발적인 행위여야 한다. 공감과 이해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욕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체리피커는 비난하기가 애매하다. 물론 심정적으로 달갑게 받아들이기는 더 어렵다.


체리피커는 관계 안에서 자신의 편함(안락)이나 실속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그것들이 방해를 받는 것은 체리피커에게 불편을 감수하는 일이다. 체리피커는 그런 '희생'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불편을 감수하느니 관계를 끊어서 불편을 제거하는 쪽을 택한다. 동료직원의 업무공백을 메우기 위해 팀원들이 야근을 불사하는 상황에서 자기 일 끝났다고 휭하니 가버리는 사람은 '연대', '공감' 같은 관계의 줄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체리피커는 관계가 주는 의미 보다는 관계에서 얻는 편함이나 안락함, 실속 따위의 가치에 중심을 둔다고 할 수 있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체리피커에 어울리는 동양의 말을 찾는다면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혼기가 찬 처녀가 있어 두 명의 남자를 소개받았다. 동쪽에 사는 사내는 돈이 많은데 못생겼고, 서쪽에 사는 사내는 가난하지만 인물이 좋았다. 동쪽 사내가 좋으면 오른쪽 어깨를, 서쪽 사내가 좋으면 왼쪽 어깨를 벗으라고 하자 처녀는 양쪽 어깨를 모두 벗었다. 무슨 뜻이냐(뭥미?) 했더니 처녀는 밥은 동쪽 집에 가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 가서 자고 싶다고 대답했다. 동쪽에서 밥먹고, 서쪽에서 잠잔다는 뜻의 동가식서가숙은 여기에서 나왔다.


동가식서가숙의 주인공 처녀는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만족감을 모두 얻으려고 했다. 사람이라면 둘 다 놓치기 싫은 것이 당연하다. 아주 솔직하고 '쿨'한 대답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처녀의 대답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배 곯는 것과 못생긴 사람과 살을 섞는 불편 중에 하나라도 감수하기 싫다는 뜻으로도 이해된다. 혼인도 관계의 한 가지다. 관계에서 불편이나 손해를 감수하지 않겠다는 점에서 동가식서가숙 하려는 그 처녀도 일종의 체리피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의미의 관계와 가치의 관계

관계가 항상 안락하고 편할 수만은 없다. 관계란 성향, 취향, 성격, 경험, 기호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얽히고 감정을 나누는 일이다. 그러니 불편이 생기는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이 불편을 어느정도 감당해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계의 유지를 위해 어느정도의 불편과 손해를 이해하고 참아낸다.


때로 관계를 무쪽 자르듯이 단칼에 일도양단 하는 사람을 두고 '쿨'하고 말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함부로 그렇게 말할게 아니다. 관계를 단절하는 본질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관계에서 안락이나 이익을 얻을 수 없어서, 불편이나 손해를 감수할 생각이 없어서 관계를 끊는 것을 쿨하다고 하긴 어렵다. 그건 그저 자기 입맛에 맛는 관계만 맺으려는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관계의 소중함은 관계가 주는 실속이나 가치에만 있지 않다. 관계맺기를 많이 경험할수록 우리는 의미있는 관계에 더 의지하게 된다. 당장에는 관계가 주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체리피커, 동가식서가숙 하려는 깍쟁이가 실속 있어 보인다. 그래서 이기적이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의미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낫다.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가치 대신 불편과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 때 곁에 어떤 사람이 남을 지를 생각하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sungyoul.kim73@gmail.com



Posted by 김성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