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말하기/연애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것

김성열 2014. 1. 2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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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이성적인지 감성적인지 구분해보라면 누구나 쉽게 사랑은 감성적인 것이라 답한다. 맞다. 사랑이야말로 열정, 애뜻함, 갈망 같은 감성의 덩어리다. 절제, 인내, 현실감의 유지 같은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그래서 차가운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성적인 사랑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그런 말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감성의 충만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쉽지 않은 세상, 쉽지 않은 사랑

사랑하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요즘 세상에는 사랑만 갖고 살지 못한다는 말이 진리 수준에 이르렀다. 가슴으로 사랑하지만 차가운 머리가 없이 현실을 살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얘기다. 흔히 말하는 직업, 학벌, 가계(家系), 연봉, 외모, 종교 같은 조건이 바로 '밥', 현실에 속한다. 이것이 사랑이 직면한 현실의 문제다. 사랑만으로 살겠다고 하거나, 반대로 현실적인 것만 따지겠다고 하면 문제가 없다. 또, 사랑과 현실적인 조건 둘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랑과 현실을 둘 다 만족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둘 모두를 만족하는 것은 남여 구분 없이, 그야말로 연애 로망의 본좌급다. 로망이 되는 이유는 그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열정적인 사랑도 하고 싶고 현실적인 만족감도 얻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성(현실)과 감성을 모두 만족하고 싶은 것에서부터 두통이 시작된다. 안타깝게도 이성과 감성은 시소와 같아서 둘 모두 위로 올라가거나 아래로 내려올 수 없다.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온다. 그 때 맞닥뜨리는 고민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현실을 손해 보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지, 부족한 사랑 대신에 현실에 만족할지 말이다.


나쁜 선택은 없다

결혼과 같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시점에서 사랑을 선택했는지 현실을 선택했는지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선택한 본인이다.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각자의 기호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옳고 그름으로 가를 수는 없다. 사랑을 택한 사람이 현실을 택한 사람보다, 또는 그 반대의 경우에도 어느 한쪽이 지적으로 우월하다거나 윤리적으로 더 바르다 할 수는 없다. 다만, 상대에게 정직한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인간적인' 문제가 남는다.


본인에게 정직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선택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선택을 한 자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신을 속인다는 것은 문학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다중 인격자를 제외하면 말이다. 하지만 나 이외의 타인은 속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내가 선택한 상대방, 나를 선택할 수 있는 상대방을 속이는 일이다. 현실이 중요하다면 현실이 중요하다고 얘기를 해야 한다. 사랑이 중요하다면 사랑이 중요하다고 상대방에게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상대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랑의 선택은 쌍방향

"나는 사랑보다는 당신의 학력과 연봉 때문에 당신을 택했어", "나는 당신의 외모에 대한 만족감이 사랑보다 더 커서 당신을 택했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상대방도 상대방의 이유와 판단으로 나를 선택하든 말든 하라고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쌍방인데, 한쪽이 부정확하거나 거짓된 정보를 내놓게 되면 다른 한쪽은 정상적인 선택을 할 수 없다. 만약 현실을 선택하고서도 사랑을 선택한다고 거짓을 말한다면 그것은 상대방을 속이는 짓이다. 그래도 어떻게 대놓고 말하겠느냐고 말하진 마시라. 상대에게 숨겨야할 질 나쁜 일이라고 고백하는 셈이다.


사랑이 우선이었고 그에 따라 상대를 선택했으면서도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현실을 택한 것이라고 얘기한다면 그야말로 사연이 있을 것이다. 보기 드문 광경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다르다. 헤어지는 상황에서 거짓말이라도 사랑했다고 말해주는 것은 로맨스 차원으로 봐도 된다. 하지만 사랑보다 현실을 크게 생각한 결과로 상대를 택했으면서 사랑을 택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기에 가깝다. 왜냐하면 사랑을 택했다는 거짓말을 통해 현실을 획득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더 아픈 것

사랑 없이 상대를 선택해도 괜찮다. 하지만 사랑보다 현실을 더 크고 중요하게 보았으면서도 사랑을 가장하는 일은 정말 못된 짓이다. 사랑이든 현실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되겠는가? 사랑을 그런 수단으로 쓰는 것,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사랑에게 할 일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사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사랑하는 척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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