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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생각연구소, 2017)

김성열 2018. 6. 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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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생각연구소, 2017)


감정의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정의는 '어떠한 현상이나 일, 사물에 대한 심정이나 기분'이다. 나는 이 정의를 '외부 자극에 대한 마음(정신)의 반응'으로 표현한다. 이 정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받아들여져 왔으며, 감정은 이런 정의에 근거하여 해석되고 논의되어 왔다. 반면에 감정의 목적이나 형태, 발생의 메커니즘 따위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의견이 있어 왔으며 지금도 새로운 의견들의 등장이 계속 되고 있다. 


특히 근래에는 과학기술의 발달 덕에 뇌과학, 신경과학 분야에서 감정에 대해 좀 더 계량적이고 물리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350여년 전 르네 데카르트가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어 있다는 심신 이원론을 바탕으로 '정념'을 논할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현대의 뇌과학자나 신경과학자의 입장에서 '정신'은 젤라틴 덩어리 같은 뇌의 물리적이고 기계적 작동의 산물로 여겨질 뿐이다. 이 정도 분위기면 감정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있을 만도 하지만, 여전히 '세상에 대한 반응'이라는 고전적인 감정의 의미는 건재하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 책에서 고전적인 감정의 정의를 전복하는 것을 바탕으로 감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글쓴이는 주저 없이 말한다.


감정은 세상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이 책에서 감정은, 편적인 정의를 빌어서 말하자면, '어떠한 현상이나 일, 사물에 대한 해석을 통해 구성한 감각에 부여된 의미'다. 즉, 감정은 외부로부터의 들어온 자극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 아니라 자극에 대한 해석의 결과로 '구성된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감정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수 천년 동안 감정은 '통제'의 대상이었다. 여기서 통제란 감정이 발생하고 나서의 처리 방법에 관한 것이다. 플라톤은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해야 이데아에 이를 수 있다고 했고, 데카르트는 확고한 의지로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했으며 흄은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고 주장하며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프레임은 현대에도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이러한 프레임을 뒤집어 감정을 '만들어진 것'에서 '만든 것'으로 정의한다. 수 천년 동안 이어진 감정에 관한 논의와 논리들을 뒤흔드는 발칙한 명제다.  


감정은 우리가 만들어낸다. 우리는 감정을 인식 또는 확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러 체계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즉석에서 우리 자신의 감정 경험을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구성한다. 인간은 고도로 진화한 뇌의 동물적인 부분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가공의 감정 회로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설계자다.


그러나 여전히 고전적인 감정에 대한 정의는 통한다. 리사 펠드먼 배럿도 그 점을 알고 있다. 그는 위의 문장 바로 뒤에 '그러나 이런 견해는 우리의 일상 경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점을 극복하기 위해 신화화된 감정의 보편성을 허무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리사 펠드먼 배럿의 견해가 확고한 진리임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꽤나 합리적인 견해라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성은 감정에 휘둘리기 쉽다는 흄의 명제를 좋아하고, 감정이 인간의 활동에 있어 강력한 원리 중 하나라는 스피노자의 주장에 매력을 느낀다. 또, 감각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의미 부여의 결과이든, 무의식적으로 발생한 감각이든 간에 감정이 '세상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이 책의 전부를 휘감고 있는 감정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낀다. 예나 지금이나 "감정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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