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읽고 생각하기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창장과비평사, 2002)

김성열 2013. 10. 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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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창작과비평사, 2002)

 

아는 이가 추천한 세 작가 중의 한명인 성석제의 중단편 모음집이다이 책에는 모두 일곱개의 이야기가 있는데,  약간의 피식거림이 나도 모르게 입가로 새어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같은 이에게 소개 받아 읽었던 두 작가(이문구, 이청준)보다는 가볍게 느껴지는, (소설을 잘 모르는 나지만) 다소 내공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독후감을 쓰려고 3주 정도 만에 책 내용을 반추해보니 나의 피식거림이 섣불렀다는 (불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지금에서야 나름 말랑말랑한 재미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황만근은 또한 책에 나오는 예()는 몰라도 염습과 산역같이 남이 꺼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을 섰고 동네 사람들도 서슴없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 똥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짓고 벽돌 찍는 일 또한 황만근이 동네 사람 누구보다 많이 했다. 마을길 풀깎기, 도랑 청소, 공동우물 청소...용왕제에 쓸 돼지를 산 채로 묶어서 내다가 싫다고 요동질하는 돼지에게 때때옷을 입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에는 그가 최고의 전문가였다.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 일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런 일에 대한 댓가는 없거나(동네 일인 경우), 반값이거나(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하는 경우), 제값이면(경운기와 함께 하는 경우) 공치사가 따랐다."

 

작가의 말 풀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이제서야 느낀다무겁지 않은 상황에, 별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시원찮은 이야기라고 여기다가 책을 놓은지 한참이 되어서야 어..! 한다.

 

- 그렇게 잡일 좋아하던 반푼어치 황만근이 사라지고 나서야 황만근의 중함을 느끼고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귀찮아빠진 친구에 대한 성냄은 괜한 미안함의 다른 말인 걸 나중에야 알고 (천애윤락)

모자란 것들은 모아봤자 평균이 높아질리 없음을 새삼 깨우치고 (쾌활 냇가의 명랑한 곗날)

만들어지고 과장된 권력은 그것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결과임에 당황하고 (천하제일 남가이)

비루하고 질 떨어지는 꿈 속에서 헤매는 모습이 알고보니 내 것이었음에 화들짝 놀라고 (욕탕의 여인들)

 

피식거리며 쉬이 책장을 넘겼던 내가 지금은 낯이 좀 뜨겁다자기가 속한 세속의 색으로 염색한 세상 사람들에게 농반 진반으로 던져주는 우화처럼 느껴져서다. 거기에다 낯이 뜨겁다는 것은 나 역시 비루하고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 중에 하나임을 본의 아니게 느껴져서일 때문이고....

 

생각해보니 책장이 지루하지 않게 휙휙 넘어가던 것은 가볍게 받아넘긴 이야기들이 돌직구라는 것을 쉽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작가의 멋진 훼이크가 아니었을까 싶다만약 그게 훼이크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글을 제대로 못 읽은 내 아둔함 인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대단한 책, 대단한 작가라고 감히 평가를 할 수 없지만 곱씹을 거리를 남기는 그런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 책이다추천해준 이에게는 다시한번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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